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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치료사 Apr 12. 2024

폭력의 단계

폭력의 계단을 내려오는 인식

23년 4월 작성 글입니다.





 

가족 간 휘두르는 폭력,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폭력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오늘 아내와 대화 중에 폭력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단계는 구타입니다.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손과 발이나 단단한 것으로 사람을 때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40대인 저만해도 많이 맞고 컸습니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아버지가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셔서 일주일에 몇 번이고 물건을 던지거나 하는 모습을 봤고, 다리에  피멍이 들도록 맞은 것도 수차례는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친구들 뺨을 때리는 것도 흔히 보던 때라, 선생님도 때리는 데 당연히 부모님한테도 맞는 건가 보다 하고 큰 것 같습니다. 그렇게 폭력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길들여진 부분이 있는 거 같습니다.


첫째 아이의 종아리를 4살때 쯤  딱 한 번 회초리로 때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랑의 매'라고 생각했고, 감정을 실지 않은 훈육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10살 첫째 아이는 가끔 그때 맞은 걸 억울한 듯 말합니다. 그럼 저는 그때마다


"그때는 아빠가 너무 몰랐어. 미안해"라고 합니다.


2단계는 비난, 욕설 등 언어 폭행입니다.


존재에 대한 강력한 부정, 욕설 등이 해당됩니다.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나는 네가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같은 말을 부모님으로부터 자주 들은 사람은 내면세계가 건강하기 어렵습니다.

여기부터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상대방 삶의 의욕을 꺾는 어려움을 준다면 충분한 폭력입니다.


아직도 학교나 직장에서 언어폭력을 당하는 사람이 많을 거 같습니다. 저도 얼마 전까지 당했었고요. 선배들의 욕설을 못 견디고 대학동기 한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주던 대기업을 그만뒀었습니다. 동기 모임에서 부서장 욕설을 녹음한 걸 틀어줬는데 "밖에서 보는 이미지와 달리, 저 회사도 가관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3단계는 고성입니다.


높은 톤으로 옳은 말을 내지릅니다. 동기들과 주로 지내는 대학생 때와 상하관계가 뚜렷하게 있는 직장에서 고성을 지르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육아를 하면서 말을 안 들으면(급할 때 빨리 안 움직이면) 작년 초까지만 해도 소리를 질러 상황을 처리했습니다.


이 역시 마음을 경직되게 하고, 스트레스를 줍니다. 그리고 소리 질러도 찝찝하긴 구타와 마찬가지입니다.


4단계는 나의 옳음을 강요하는 폭력입니다.


유명 강사이신 김창옥 선생님 강연에서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원래 목욕탕  냉탕에서 냉수폭포를 틀어놓고 찬 호흡을 내쉬는 아저씨들이 싫었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좋아하는 동생과 찬물에 들어가서 아주 좋은 추억을 만들고난 후, 자신도 목욕탕 냉탕에서 찬물 샤워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찬물 샤워가 너무 좋다고, 이것을 좋아하는 후배에게 강요한다면 사랑을 빙자한 폭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찬물 샤워 싫은 사람은 절대 못하는 데 강요하면 혐오감만 더 키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배우자 간에 "너는 자기 개발 안 한다. 그러니 우리가 이 모양이다."라고 한심해 하면서 말한다거나,"넌 왜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혹은 쇼핑을 혹은 낚시를 등산을 나만큼 안 좋아하냐?"라는 강력하게 말한다면, 찬물 샤워 싫은 사람에게 찬물 샤워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5단계는 눈빛과 표정과 한숨입니다.


첫째 아이가 다녔던 영어학원 선생님들은 대표님으로부터 '눈빛으로도 때리지 마라"라고 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ADHD기질로 학교에서 차가운 눈빛을 많이 받는 아이라 이 얘기에 감동받아 아이를 다니게 했었습니다.


물론 학원이 말처럼 이상적으로 운영되지는 않았기에 아쉽지만 그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뜻을 품고 교육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동네 아줌마가 물어보면 괜찮은 학원이라고 얘기해 줍니다.


아내가 말하길 저는 기분이 나쁘면 얼굴에 그 감정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육아하다가 저의 표정이 나빠지면 아내는 미어캣 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의 동태를 살핍니다.


아내는 내가 기분이 나빠 보이면 집안일을 하거나, 누워있다가도 일어나거나 합니다. 제 딴에는 배려를 한답시고 "남편 눈치 보지 마라. 내가 눈치를 안 줘야 하는 것도 있지만 너도 네 것을 주장해"라는 식의 말을 종종 했었습니다.



"나는 눈치를 줄 수도 있지만, 넌 좀 뻔뻔하게 내 눈치를 보지 마!?" 이게 뭔 말인가요?


저 처럼 자기주장 강하고 자기가 원하는 걸 관철시키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눈치를 안 보는 것이 비교적 쉽습니다.


반면 제 아내처럼 기질적으로 내성적이고 마음이 여려 눈치를 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눈치를 주는 것', '정색을 하는 것'도 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장되고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까요.


눈빛으로 이미 "나는 네가 지금 밉다. 싫다. 짜증 난다!"가 읽히는 데 어찌 상대방이 마음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내 눈빛으로 아내를 때리고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나는 왜 그리 편하게 눈치를 주고 표정으로 때렸을까요? 


수 십 년 보고 자란 아버지나 학교 선생님들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


"나는 맞기도 했는데, 때리는 것도 아닌데 뭐!"라는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깔려 있었다고 봅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나를 때렸고, 아빠도 나를 때렸으니 나는 안 때리고 소리도 안지르면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이전 세대보다는 나아졌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제가 봐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표정관리를 해서 가면을 쓰고 가짜 친절함을 가족들에게 보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눈빛으로 째려본다거나 정색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어떤 이유로 마음이 상한다. 속상하다."라고 그때그때  솔직하게 말하는 게 가장 좋은 거 같습니다.


삶이 좋아지려면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에 대한 인식이 이제라도 새롭게 된 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이제 "고성 금지. 짜증은 내 문제다"라고 노트에 매일 쓰지는 않습니다. 일 년 정도 쓰니까 훈련이 돼서 소리 안 지르고도 육아가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이제는 "눈빛으로라도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지 말자."라고 매일 써야 할 차례인 거 같습니다.



P.S)

좋아요 눌러주시는 ,구독자님들 참 고맙습니다. 덕분에 계속 글을 쓸 용기를 낼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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