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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치료사 Apr 26. 2024

나는 불편하면 옳은 소리를 한다.

작년 5월 작성글입니다.



저는 지금의 아내와 십수년 전 20대 후반부터 만났습니다. 당시 대학생이었고 아내는 새내기 직장인이었습니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제가 보기에는 비싸 보이는 가방을 아내가 메고 나왔습니다.


내가 사줄 수 없는 비싼 가방을 든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형편이 좋아지면 어려운 사람 도울 거야." 

"디자인이 좋다고 비싼 걸 사는 돈 낭비야"


라는 식으로 말하며 아내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여자가 좋은 가방을 메고 싶은 건 당연한 본성에 가까운 것인데 그 욕구를 채워주기는커녕, 죄책감을 쒸어 주었습니다.


당연히 아내는 불편했겠죠. 자기가 번 돈 자신을 위해 일부 썼을 뿐인데도 욕을 먹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신경은 쓰이고, 억울한 마음이 많이 들었을 거 같습니다.


저도 취직을 하고 비싼 선물도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었을 때는 이런 소리를 하지도 않았고, 이런 마음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받는 것 같을 때 나는 불편한 소리를 했었습니다.


아내는 대학생이었던 제게 가방을 받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만 이해를 원했을 뿐인데, 돈 없는 열등감이 있는 남자는 이기적이라 자기식으로 ‘과소비’라고 낙인을 찍어 이해하고 ‘도덕적 강요’를 합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아내의 가방은 명품이 아니었고, 사회 초년생이라면 누구나 메는 그런 가방이었습니다.)


딸아이의 친구 엄마가 친구를 딸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했습니다.


평소 잘 지내던 둘째 딸아이의 친구 엄마는 갑자기 같이 다니던 학원도 말없이 끊어 버리고, 우리 아이에게서 자신의 딸을 떼어 놓으려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의 무언가가 자신의 딸을 힘들게 하나 보다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으나, 정도가 심했습니다. 


제가 옆에 있는데도 다짜고짜 우리 아이에게 다그치는 등 선을 넘는 행동을 해서 상당히 불쾌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우리 아이로 인해 우는 일이 있으면, 이를 성장의 과정으로 여기지 않고 우리 아이가 자신의 딸에게 상처 주는 나쁜 아이로 이해하니 생기는 문제였습니다.


친구와 친하게 지내다 보면 어린 유치원생들이 서운해서 울 일이 생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면서 사는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딸아이가 그 친구로 인해 울 때 무덤덤한 반면, 그 집은 외동인 딸이 울면 온 집안에 지진이 나는 거 같았습니다.


그 엄마의 어른답지 못한 사고방식이 일을 크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또 우리 아이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으니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아픈데 아내가 하기로 한 빨래를 제때 안 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 컨디션이 좋으면, 아내가 회사에서 바쁘니 좋은 마음으로 했을 텐데, 짜증이 나서 한마디 합니다.


"빨래는 네가 하기로 한 거 아냐?"


아내는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달리 할 말이 없어 빨래를 영차영차 힘겹게 합니다.

저는 또 시간이 늦었는데 자려고 하지 않는 모습에도 짜증이 납니다.


"애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데 10시가 되면 씻고 누울 생각을 해야 되는 거 아냐?"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의 나를 관찰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이 불편하면 가까운 사람에게 옳은 소리를 기분 나쁘게 하는 구나.”



나는 불편하면 옳은 소리를 한다.


나는 내 마음이 불편하면 옳은 소리를 가족들에게 합니다. 내 마음이 불편하면 가까운 사람들도 불편하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못된 성격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옳은 소리’의 근거가 나의 불편함이라는 가변적인 변수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설득력이 이미 없습니다. 

그리고 이럴 때 말하는 ‘옳은 소리’는 솔직하지 않기에 공감을 얻기 힘듭니다. 


‘옳은 소리’를 해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아내에게 아차 싶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둘째 친구 엄마와 있었던 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마음이 불편한 상태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마음 불편할 때 옳은 소리를 한다.

"육아 스트레스를 너에게 돌리고 있는 거 같다. 미안하다"


아내는 솔직한 제 마음을 듣고 이해해 주었습니다.

저는 ‘옳은 소리’가‘ 배려’도 ‘사랑’도 ‘가족을 위한 어떤 것’도 아님을 이제 압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변합니다. 진심으로 사랑받을 때,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때, 그제야 사람은 변합니다.


혹시, 가족에게 옳은 소리를 하고 계시다면, 마음 속 어딘가 다른 이유로 불편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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