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의 차이
연애와 결혼의 차이
결혼할 때가 되거나, 지나면 별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왜 아직도 결혼 안 하냐?" 물어본다. 서른 세네살 때 교회 찬양팀에서 기타로 봉사한 적이 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유부남 형이 갑작스레 물어본다.
"멀쩡해가지고 왜 장가를 안 가요?" 장가를 못 가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듯했다.
"사회적으로 제기능을 할 수 있는 데 왜 못하니? 너 어디 이상 있니?" 이렇게 묻는 거 같아 아주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다.
그러던 중, 대학동기 한 명은 벌써 아이가 유치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나만 너무 늦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때의 나처럼 많은 경우에 결혼을 하고 싶을 때에 만나지는 사람과 우리는 평생을 살기로 약속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물론 나는 아내를 무척 사랑해서 결혼했다. 아내가 이 글을 읽고 있어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그때로 또 돌아간다고 해도 더 훌륭한 선택을 하라는 법은 없다. 결혼은 미지의 세계고, 그때의 나는 결혼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경험이 없기에 누가 가르쳐줘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 결혼과 연애는 무엇인가?
연애는 책임이 제한적이다. 보통 연애하면서 아이를 함께 키우지는 않는다. 미우면 헤어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결혼이란 행위에 대한 책임은 어쩌면 영원하다. 죽는 날까지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것을 가슴 아파하는 부모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볼 수 있는가? 부모를 원망하는 버림받은 자녀들의 눈물은 지금도 흘러 내리고 있지 않겠는가?
연애는 선별적이다. 아내는 연애할 때 우울한 표정이 문득문득 보이곤 했으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선별적으로 보고 싶은 면만 집중해서 보고, 미래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많아야 두세 번 만난다면 단점은 최대한 억누르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며 만남을 이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은 포괄적이다. 배우자의 좋은 면, 나쁜 면을 모두 받아내야 한다. 배우자는 회사가 아니다. 한 기업이 다른 회사를 인수하려 할 때, 망해가는 사업부는 버려 버리는 부분 인수가 가능하다.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배우자의 마음에 든 것이 원망이든, 미움이든, 감사든, 사랑이든, 괴상한 시어머니든, 인자한 장모님이든, 결혼은 포괄양수 조건 계약이다.
연예는 목표지향적이다. "노처녀/노총각 소리 듣지 않겠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 혹은 "지겨운 아빠로부터 벗어나겠다.", 혹자는 "처가나, 시댁 살림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등의 목표를 위해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목표는 자신의 단점을 가리고, 억누를 수 있는 힘을 준다. 친절하지 않은 남자가 결혼을 하려고 몇 년 친절한 척 연기를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기독교 집안 여자에게 장가가려고 믿음 없이 일이 년 교회를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목표했던 결혼이 이루어졌다. "드디어 노총각, 노처녀를 딱지를 뗐다. 부자가 되었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로부터 벗어났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마치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잠시 행복해하다, 금방 요요로 원래 몸무게로 돌아가는 사람처럼 억눌렸던 나의 '진짜 자신'은 결혼식과 함께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중요한 것은 진짜 내가 누구인지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만날 수 없었던 진짜 나, 진짜 배우자의 모습은 어색하고 당황스럽고, 때로는 씁쓸하기까지하다.
그럼 '진짜 자신'은 누구일까?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다이어트에 답이 있다. 살을 확 빼도 매일 운동하거나, 좋은 것 위주로 적당히 먹는 '습관'이 없다면, 날씬한 몸은 유지되지 않는다.
그렇다. '습관'이 '진짜 나 자신'이다. '내가 반복하는 것'이 '나 자신'을 제일 잘 설명한다.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는 부모와 유사한 행동을 하는 데 익숙하다. 그 익숙함이 습관이 된다. 거울처럼 생각 없이 따라 해왔기에 가치판단을 해본 적이 없다.
결혼한 우리 모두는 결혼 전부터 지니고 있던 나쁜 습관이 있다. 아쉽게도 나쁜 습관도 운동같은 좋은 습관처럼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기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모르는 것이 진짜 문제다.
참 다른 우리 부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우리 부부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먼저 아내부터 말해보면,
아내는 강남 8 학군 지역 한 아파트에서 태어나, 취업할 때까지 거의 평생을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예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대학생 때는 객관적으로 눈에 띄는 외모였다. 연예기획사에서 명함을 받기도 하고 길 가다 보면 차 한잔 하자는 남자들도 꽤 있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최고 명문대, 당시 최고 인기학과 출신이시다. 아버지는 이름을 대면 모두 알만한 대기업을 십 년 이상 근무하시다 퇴직하셨다. 아내는 부모님과 같은 수준의 학교를 가지 못했다. 서울에 있는 4년제를 나왔다.
아내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생겨, 아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털털하다'라고하거나 '배려심 많다'라고했던 거 같다.. 이쁜 애가 털털하고, 이쁜 척을 안 하니,친구들 평판이 좋은 편이서 더 좋아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은 어머니 혼자 살고 계신 부산 한 아파트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 집은 서면에서 반송까지 부산 여기저기를 13번도 넘게 이사를 다녔다(아버지는 의료사고로 7년 전 돌아가셨다.) 그리고 두 분 다 대학교를 가지 못했다.
부모님은 옷가게를 운영하셨는데, 학창 시절 내내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집에 있던 적이 없다. 초등학생이었던 누나와 나는 숨을 참고 연탄불을 갈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나 라면을 먹으며 저녁 늦게 까지 엄마, 아빠를 기다려야 했다.
나는 기억은 없지만 우리 집은 기초 생활 수급대상자가 되어 정부미를 얻어먹기도 했단다. 초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줄곧 가난했다. 부모님의 보살핌이 없으니, 준비물도 잘 챙겨 다니지 못했다.
가난때문인지 초등학교 내내 나는 의기소침했고, 친구도 별로 없었다. 공부도 못했다. 지방대를 갔다가 인서울 대학교에 편입학에 합격하고, 제대 후 교회 대학부에서 아내를 만났다.
이렇게 아내와 나는 졸업학교 수준과 종교 말고는 유사한 점이 거의 없다. 아내와 나는 정말 다르게 자란 사람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연애하며, 사귀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다.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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