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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치료사 Jul 26. 2024

'진짜 너'와의 첫 대면

신혼여행에서 처음 만난 아내


정신없이 결혼식을 끝내고 간 호주 시드니는 정말 아름다웠다. 패키지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는데, 신혼부부 5쌍 정도가 함께 다니는 것이었다.


투어 가이드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우리가 어리다고 은근슬쩍 무시하며, 설럼설렁 일하는 거 같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는 기념품 샵이나 영양제 가게에 우리를 오래 머물게 했다. 가이드가 있는 여행이라는 것이 으레 이런 일이 있다는 잘 몰랐다. 하지만 아내는 같이 다니는 분들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싫은 티를 내지 않는다.


어느 기념품샵에 끌려 들어간 우리 신혼 여행객 5쌍은 한 방에 갇혀 상품 설명을 들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강매당하는 그 시간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중간에 나와서 같은 건물 내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배회하였다.


상품설명회를 마치고 나온 아내는 자신에게 말도 없이 나가버린 것에 대해 화가 나 보였다. 하지만 왜 그러는지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날, 그다음 날, 그리고 또 그다음 날도 아내는 내가 하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과 무시로 일관하였다.


신혼여행은 일정대로 진행되는 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계속 그 이유는 몰랐다. 눈치가 보여 소파에서 잤다. 무슨 바람이라도 피우다가 걸린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함과 억울함이 쌓여만 갔다.


즐겁고 행복해야 할 호주 여행의 대부분은 그렇게 눈치를 보며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신혼여행의 막바지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Great Barrier Reef)와 시드니 하버브리지 도시 야경이 아내의 마음을 녹여주었고, 아내는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혼 집으로 와서도 아내의 침묵은 계속되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내는 계속 침묵했고, 나와 얘기하려 들지 않았다. 나는 괴로운 일이 생기면 교회를 찾는 습관이 있다. 어머니의 영향인데, 어머니는 인생의 고비마다 기도로 정면 돌파하시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신 분이었다.


어머니는 기본적으로  평생 새벽기도를 거의 매일 나가셨다. 그리고 큰 어려움이 있으면 기도원에 들어가 3일씩 금식기도를 하셨다.


아들인 나도 어머니 따라 기도원과  교회에 자주 가야 했다. 거기서 놀기도 하고, 자기도 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내게 기도원이나 교회는 익숙한 곳, 힘들면 더 자주 가는 곳이었다.


아파트 근처 교회에 가서 아내와 관계를 회복시켜 달라고 새벽기도를 나갔다. 21일을 작정했고, 18일쯤 나갔을까? 아내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겹게 화해를 하고 1년 정도는 비교적 잘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유는 내 억울함이 풀려서가 아니라, 아내가 아이를 바로 임신한 터라 잘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임신기간에 서운하게 하면 평생 간다"


먼저 결혼한 회사 선배들의 조언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기에, 행여나 서운함이 생길까 아내에게 잘하려고노력했다. 임신 중인 아내 위주로 맞추고 살다 보니 사이가 나빠질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왜 그리 신혼여행 때 오래 침묵했었는지 설명을 들을 기회 없이 예쁜 아들이 세상에 나왔다.


희망퇴직과 아내의 칼바람


아이가 두 살 때쯤  회사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회사의 대졸 사무직은 전부 희망퇴직을 신청하라는 것이다. 회사 사정이 어렵긴 했지만 대기업 계열사라서 이렇게 극단적일 줄은 모두 몰랐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회사가 지정한 희망퇴사일 까지는 두어 달 남은 상태였고, 처자식이 있는 나는 당연히 직장을 알아봐야 했다. 거의 5년을 열심히 일한 곳에서 이런 일이 있으니 너무 속상했다. 답답해서 옥상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답답합니다. 살아갈 길을 열어주세요."


다행히 그룹 내 다른 회사에서 공채를 하고 있었다. 구매부서였다. 회사 위치가 강남이고, 집에서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어서 다른 회사는 알아보지 않고 이 회사에 집중했다.


기존 회사의 임원이 "부득이하게  희망퇴직하는 경우이고, 좋은 인재입니다."라는 식으로 추천해주기도 했고, 같은 그룹사로 이미 문화적으로 적응이 되어 있는 내가 유리해 보였다.


최종면접, 사장님은, "기업구매를 할 때 가장 조심해야할 점이 무엇이냐?" 얘기해 보라고 하셨다. 정중앙에 앉으신 사장님은 다른 임원들 얘기를 듣고만 있다가 단 한번 이 질문만 하셨다. 당락을 결정짓는 제일 중요한 질문임을 직감했다.


"연간 계약을 하면, 가격은 싸도 품질이 들쑥날쑥하여 현장에서 고생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따라서 품질의 지속적 안정성이 보장되는가를 구매 계약에서 가장 주요하다고 봅니다"라고 대답했다.


다른 지원자들은  나와는 다른 내용을 얘기했고, 사장은 내 대답이 정답이라고 알려 주면서 면접을 마무리했다.


"합격하겠구나."


그룹 문화 상 사장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 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내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최종면접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채용에 떨어지자 아내는 또다시 침묵시위를 했다. 내 쪽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나도 떨어져서 속상하다고! 넌 왜 불만을 이딴식으로 표출하는 거야?"


속으로 말했다. 화가 너무 났다. 억울했다. 내 인생이라고 내 맘대로 다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내는 또 침묵했고, 서글프게 눈물만 흘렸다. 몇 시간을…


마치 바람피우다 걸린 사람 취급당한다고 느꼈다. 바람을 피우다 걸려서 이런다면 이해하겠지만, 나는 아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야 어디든 구해서 다니면 되는 것 아닌가?


"나도 힘들다고, 나도 떨어져서 속상하다고, 내가 위로받아야 할 타이밍이라고!"


아내의 절망이 너무 깊어 보여서 내 마음은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었다. 아내는 슬픔에 젖어 내 감정은 전혀 보지 못했다. 나는 계속 기도하고 있었고, 이상하게 떨어질 거 같지 않았다.


낙망한 아내에게 데살로니가 전서말씀을 인용하여 힘내자고 말했었던 걸 기억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16절)


신기하게도, 떨어진 그 회사에서 며칠 뒤 연락이 왔다. 다른 포지션에 추가합격했다고. 기존 합격자가 안 와서, 나를 뽑기로 했단다. 겸염 쩍어진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했다.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넌 내 마음을, 내가 어릴 때 겪었던 것이 무엇인지 몰라..."


아내는 아버지가 일찍 회사를 관둠으로써 집안이 힘들어졌기 때문에 두려워서 그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과를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보기엔 아내의 사과는 진심이었으나, 아내의 눈물은 나에게 미안해서 흘리는 눈물은 아니었다. 옛날 힘들었던 때가 생각나 흘리는 자기 연민의 눈물로 보였다.


입사 후 연봉계약서 사인하려고 보니 기존 연봉보다 20% 이상 인상된 금액이었다. 아내에게 전화로 소식을 알려주었다. 아내의 우려와 달리 나는 더 좋은 회사에, 더 좋은 조건으로 가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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