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습관이다.
아내가 화가 날때 침묵시위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빌드업이 길었다. 그 이유는 실제로 그 감정을 어느 정도라도 이해하기 까지 수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아내의 침묵이 습관이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장인어른과의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아내는 1남 2녀 중 막내다. 장인어른이 회사를 다닐 때는 집안 분위기가 늘상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수십년 전 강남에도 자가용 없는 집도 많았단다. 아내의 가족은 차도 있고 집도 있었다.
주말이면 아버지랑 등산도 가고, 일 년에 한두번 가족여행도 다녔단다. 장기,바둑,영어, 피아노 등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며 사는 아내는 유복한 집안의 행복하게 사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러다 장인어른께서는 아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회사를 관두셨다. 그 이후로 퇴직금으로 사업도 하고, 주식도 했는 데 전부 다 실패했다. 장인어른께서는 아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부터 평생 생활비를 제대로 가져다 주시지 않았다.
"능력있고 똑똑한 분이 왜 재 취업을 하지 않았을까?"
장인어른의 동기들은 대기업 임원, 판검사가 되어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되었는데, 그들과 비교되어 체면이 떨어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으로 보인다.
애가 셋인 집에 생활비가 없으니, 장모님이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지, 사실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렸던 아내는 장인어른의 술주정과 이로 인한 부부싸움을 학창시절 내내 지켜 보며 감정을 억눌러야 했을 것이다.
친구들과 매점가서 맛있는 걸 사먹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친구들과 학원같이 다니는 것 등은 강남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누리는 것이다.
친구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을 아내는 가져볼 수 없으니 속상함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 것은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중고등학교때 친구가 집에 놀러오면 아빠가 있는 게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곳은 강남이다. 아빠의 친구들은 대기업 다니거나, 교수거나, 고위직 공무원이다.
아내의 준거집단에서는 집에서 노는 아빠를 가진 친구는 없다. 그래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에 자신이 없다.
대학 진학후에는 늘상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등록금은 당연히 학자금 대출이다. 학교 준비물은 직접 벌어서 준비해야 하는 압박 속에 살았다.
아내가 사회인이 되었을때 장인어른은 그마나 지키고 있던 집을 팔아 부채를 정리하고, 강남에서 강북, 강북에서 경기도 시골로 이사를 했다.
언니와 오빠 모두 결혼으로 떠나고, 홀로 남은 아내는 부모님을 따라 이사를 다니며 갑작스레 떨어진 삶의 질로 인해 슬픔이 더욱 짙어 졌다. 그러다 나와 결혼했다.
아내의 삶 속에서 모든 불행의 시작은 아버지의 퇴사다. 그리고 제일 싫은 것은 아버지가 일할 힘이 있어도 일하지 않은 이기심이다. 그러니 어느 남자이든 퇴사의 냄새라도 날 것 같으면 싫고, 이기적인 기색이 보이면 피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내는 내가 계속 자신을 슬프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 아니 본능적 방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의도치 않은 배신
아내는 필사적으로 이기적인 남자를 걸러야 한다. 퇴사하는 남자는 가정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기적인 남자는 생활비를 갖다 주지 않는다.
아내가 변했다고 믿고 막 결혼한 남자가, 신행여행와서 같이 온 사람들은 배려하지 않고 혼자 나가 버렸다. 아빠와 똑 같다. 너무 이기적이다.
아내는 내가 좋게 변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결혼과 함께 증발되었다. 되려 싫어했던 모습을 다시 보여주며서 뻔뻔하게 묻는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래?"
깊은 배신감에 몸이 떨린다.
아내입장에서는 이 결혼은 이미 이 지점에서 망했던 것이다. 아내도 자신의 엄마와 같이 힘든 삶으로 들어와 버렸다고 믿어 버렸다.
앞으로 남은 삶을 '이 이기적인 남자'의 아내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침울할 수 밖에 없다.
결혼을 무르면 여자의 손해는 더 크다. 그래서 아내는 자신이 할수 있는 '익숙한' 방법으로 처벌을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수년 간 반복해서 주었던 것과 똑같은 처벌이다.
그건이 아내의 침묵이었다. 침묵은 생의 슬픔이 만든 아내의 습관적 감정이었다.
희망퇴직할 때, 아내가 보인 침묵과 눈물도 동일 선상해서 이해가 되었다. 나는 이전에도 회사를 자주 관두는 사람이었고,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지긋 지긋한 '퇴사'라는 '비극적 사건'이 또 일어 나는 것이다.
아내는 내가 마치 자신의 아버지처럼 재취업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버렀다. 아내가 사는 세상에는 남편의 '바람' 보다 '퇴사'가 더 큰 배신이었는지 모른다.
평생 지속적으로 기울어만 졌던 살림 속에 인생이 나아 질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이변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이와 중에 나의 억울함은 계속 쌓여갔다. 나는 체면 때문에 회사를 관둘 생각을 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아내는 나의 아빠와 나를 비교해야 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