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나는 내가 아니다.
처음 만난 진짜 나의 모습
아들 철수는 상대방의 흥미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만 말하곤 했다. 뜬금없이 자신이 봤던 책 얘기나, 캐릭터, 만화 얘기를 하고, 남의 말은 잘 안 듣는다.
자기주장 강하고, 자기 말만 하는 아들을 보면서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결코 나쁜 건 나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이때만 해도 나는 인자하고 유순한 내 엄마를 닮았다고 정신승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첫째가 자기 마음대로 안 될 때 짜증 내는 거, 자기 말만 하는 거 다 자기하고 똑같아!"
뒤통수에 무언가로 쾅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아이가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 오면 짜증 내는 거, 정도는 달라도 내 모습이었구나!"
내가 원하는 나는 '순한 사람',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지만, 아내 눈에는 아들이나, 나나 오십 보 백 보였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가족이 나를 봐주지 않는다면, 그건 진짜 내가 아닌 것이었다.
내가 아버지와 닮은 행동을 한다면,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경남 창원에서 꽤 부잣집의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여자, 도박으로 가정을 보살피지 않았고, 덕분에 집은 가난해졌다고 한다.
아버지는 대학은 꿈도 못 꾸고, 공장을 전전하다, 옷을 디자인하는 일을 우연히 하게 되신다. 재능이 있으셨는지 손님이 꽤 많이 아버지 의상실로 몰려왔었다.
그래서 두 번째 가게까지 확장하다 쫄딱 망했다. 우리 집은 부산 윗 반송으로 쫓겨나듯이 이사 갔고 나는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혼자서 129번 버스를 타고 초등학교를 다녔다.
아버지는 다혈질이었다. 감정을 조절 못하고 물건을 던지고, 소리는 지르는 모습을 많이 보며 컸다. 가난하게 크신 영향으로 아버지가 특히나 예민한 것은 '돈'이었다
.
어머니가 시장을 보고 들어올 때마다 "쓸데없이 왜 이리 많이 샀냐?"고 성질을 내셨다. 엄마는 살만한 것들만 샀다고 생각하니 답답했고, 조금이라도 설명하려 들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져 겁을 줬다. 윽박과 폭력으로 가족의 기를 죽여야 아빠의 직성이 풀렸다.
아버지는 특별히 돈이 낭비되는 꼴을 보는 것을 참지 못했다. 음식물을 먹지 않고 방치하다 상해서 버린 다던지 하면 온 집안이 뒤집어졌었다.
물건을 던져 파손되거나, 몽둥이를 찾아 나를 피멍이 들 때까지 때리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돌아보면 성질을 그런 식으로 폭발시키는 것이 습관이었던 것이다. 남자인 내가 엄마와 누나보다는 만만해서 그렇게 많이 때린 거 같다.
아버지의 폭력은 내가 아버지보다 10cm 이상 커버린 고등학교 때 때리려는 팔을 힘으로 제압해서 못 때리게 하자 끝이 났다.
반면,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책임감은 정말 강했다. 평생 휴가 없이 가장 일찍 가게 문을 여시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셨다.
한 번은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입원하셨다고 전화가 왔다.
부랴부랴 가보니, 말씀을 제대로 못하셨다. 부정확한 어설픈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들, 아빠가 네 교환학생 보내줘야 되는데…"
그때 당시 나는 미국교환학생을 가려고 토플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몸이 아파도 혹시나 아들 교환학생 가는데 자신이 지장이 될까 봐 걱정했던 것 같았다.
그 마음이 고마워 눈물이 났었다. 다행히 상황이 악화되지 않아, 아버지는 보름 뒤 비교적 건강하게 퇴원하셨다.
부모가 결혼 생활의 기준이다.
나처럼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맞으면서 큰 사람은 아버지의 언행이 자신의 행동의 기준이 되기 쉽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 딴에는 아들의 종아리를 교육 차원에서 때린 적이 딱 한번 있는데, 그때 아버지한테 내가 맞은 것을 생각하면 이거는 약과라고 생각했다.
아내하고 싸울 때도 나는 물건은 안 던지니, 아버지보다는 덜 화내니, 이만하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무섭게 따지고, 소리 지르는 등 아버지를 욕했던 그 행동을 빈도는 적었을 지언 정 다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에 비해서, 덜 때린다고, 집안일을 더한다고 자신을 더 괜찮은 아빠라고 여길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는 걸 깨달아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곳은 현재이지 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자녀를 때리지도 않고, 아버지 보다 소리도 덜 지르고, 화내는 빈도가 확실히 적다고 만족할 만한 사람은 우리 어머니 때의 과거의 여성들이다.
현대의 여성들에게 적합한 기준이 아니다. 요즘 여성들은 더 높은 기준을 지켜내는 남자들을 보면서 컸다. 더군다나 과거보다 커진 경제력과 함께 가정에서 의사결정권도 더 많아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버지를 기준 삼아, 나 정도면 괜찮다"는 마음을 떠날 수 있을까?
나의 경우, 초등학교에 아들이 입학하면서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