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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치료사 Aug 23. 2024

우리가 싸웠던 이유-1

첫째의 정서문제 앞에 선 우리


맞벌이를 할 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고, 큰소리치면서 상처를 수 없이 주고받았다.


"엄마, 아빠 제발 그만해"


격하게 다투던 우리는 분노에 휩싸여, 잠긴 문 밖에서 울며 애원하는 아이의 슬픔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상황은 많이 변하게 된다.


"철수가 자리를 자꾸 이탈해요"


1학년 때는 선생님의 전화가 잦았다. 1학년 2학기에는 좀 나아지려나 기대했는데, 여전히 산만하니 선생님의전화는 빈번해졌다. 아내는 ADHD를 의심했다.


상담소를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ADHD가 확실해 보인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 드렸다. 그리고 과감하게 휴직을 던진다.


2학년 때는 아이가 수업시간에 감정조절을 못해서 문제가 되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딴소리를 해서 수업을 자꾸 방해하니 선생님이 전화해서 상담을 받아보라 했다.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을지 걱정되는 수준이었다. 대안학교를 알아보고, 홈스쿨링을 알아봤지만 답이 없었다. 정신과에서는 약물치료를 하라는데 부작용 때문에내키지 않았다.


ADHD, 육아, 심리 관련 서적 등을 수십 권 읽고 내린 나의 결론은 '부부가 싸우면 안 된다'였다.


결단코 싸우지 않겠다.


아내와 싸우지 않기로 결단했다. 부부가 싸우면 아이들의 불안도는 높아지고, 산만해진다. 산만한 아이는 학교에서 집중하기 힘들다. 상식적인 추론이다. 너무 자주 격렬히 싸운 것이 아이의 정서를 불안하게 했다고 봤다.


싸우지 않아야 한다!


부부가 싸우는 것은 아이의 불안한 정서를 만들고, 불안한 정서로는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부부싸움 없애기'라는 숙제는 실행할지, 말지 고민할 옵션이 아니었다. 다짐했다.


"어떡해든 해내야만 한다. 퇴로는 없다.'


그래서 왜 이리 많이 싸우는지 그 이유를 몇 날 며칠 골똘히 생각했다.


우리가 싸웠던 이유들


첫째, 정서적/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었다.


아내도 나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정서적으로 의지하면서 성장했고, 결혼까지 했다. 특히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와 상의했고, 어머니의 기도를 받으며 컸다. 아내는 장모님과 매일 통화하는데, 삶의 사사건건을 다 공유하는 소울메이트 같은 느낌이었다.


성경에는 부모를 떠나 부부가 한 몸이 되라고 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한 몸이 되면, 아내가 속상한 일이 내게도 속상한 것이 된다. 한 몸이 되면, 아내가 쉬는 것이 내가 쉬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나에게 좋은 일이 된다.


하지만 한 몸이 되는 것에는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부모를 떠나"는 것이다. 이 떠남은 분가하여 따로 사는 것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서적, 경제적 도움을 떠나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육아 초보였던 우리 부부는, 맞벌이였고, 아파트 청약 당첨으로 꽤 큰 부채가 있었다. 따라서 '당연히'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가와 친가 두 어머니께 아이를 봐 달라고 번갈아 부탁을 드렸다. 두 분 다 최선을 다해 봐주셨지만, 이때 우리 부부의 불화는 극에 달했다.


장모님이 아이들을 봐줄 때는 아내와 장모님이 너무 친밀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질투를 했다. 반대로 나의 어머니가 도와주실 때는 내가 어머니 편을 들고, 아내가 질투를 했다.


어른 세 명이 아이를 볼 때, 교육관, 인생관, 종교관은 다 다르다. 당연히 갈등이 생긴다. 이때 아내가 장모님을 편을 들면, 자동으로 2:1 이 되어 균형이 깨진다.

균형이 깨지면 불안하고, 이 불안은 싸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만약 장모님이 사위인 내편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질투가 나게 되고 또 갈등이 날 수밖에 없다. 성인세 명이 마음이 맞을 수 없다. 사안마다 2:1의 구조가 유지된다. 어떡해도 안정되기 어려운 구조다.


부모님의 돈을 정기적으로 받든, 우리처럼 노동력으로도움을 받던 그것은 독립된 어른으로서 모습은 아니었다. 의지를 하면 더 의지할 것을 찾게 되고 그 의지하는 마음으로 자생력을 키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 도움 없이 키우기로 결단을 했다. 여럿이 육아를 같이하면 의사결정은 복잡해지고,갈등은 더 많아진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익숙함에 속았다.


아내는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우울감을 가지고 나와 결혼했다. 나도 내 아버지의 짜증과 버럭을 배워서 내가 만든 이 가정에 들여왔다.


나의 잦은 짜증도 아내의 원망과 우울도 결혼 전에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유사상황에 반복 노출되어 문제로 인식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친구나 연인이 화나게 하면 하면 관계를 끊으면 그만이다. 싫어도 함께 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자녀가 생긴다. 그리고 부모가 나에게 보여줬던 유사한 상황에 나 역시 노출된다.


주식, 부동산 투자가 실패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워지기도 하고, 자녀교육이나 사업문제 등이 결혼한 부부앞에 놓인다.


이런 문제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익숙한 대로 부모를 따라 했다. 나는 내 아버지처럼 마음에 안 드는 요소가 발견되면 아내에게 따졌고, 기분에 따라 짜증을 냈다. 아내 역시 하던대로 낙담되면 말을 하지 않았다. 싫은 상황이 오면 자신을 부정하거나 회피했다.


어느 날 냉장고에 있던 음식이 썩어서 엄청나게 아내에게 화낸 적이 있었다. 아마 몇 년이 지나서야 내가 제일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내가 복사했음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욕하면서 배운 것이다.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아쉽게도 아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할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올바른 방법을 배운 바가 없다.


셋째, 육아는 원래 힘들다.


육아를 하는 사람은 퇴근해도 퇴근한 것이 아니다. 24시간 365일 근무 체제다. 회사에서 진을 다 빼고 집에 와서 너무 쉬고 싶은 그때, 아이에게 밥 주고, 씻기고, 기저귀 갈고 해야 한다.


은행원이었던 아내는 지점이 가까워 나보다 두 시간 먼저 집에 와서 가사노동을 했다. 아내는 나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라도 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1시간 반씩 버스를 타고 겨우 퇴근 한 나도 쉬고 싶은 것은마찬가지였다.


퇴근하자마자 늦은 밤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부부는 퇴근 후에도 둘 다 참아야만 하는 상태가 된다. 참는 상태에 있는 사람은 예민해지고 시비 거리를 찾아 폭발한다. 듣던 배우자의 불만도 함께 폭발한다.


"병 뚜껑 열어두지 말랬지!"


"양말 뒤집어서 빨래 통에 넣지 말하고 몇 번을 말해!"


오랫동안 참는 사람은 더 강하게 폭발한다. 평소 참는 게 습관적인 아내는 오랫동안 참았고 그러다 크게 폭발하면, 며칠이고 내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억울했고, 억울함은 잦은 짜증으로 이어졌다.


둘 다 회사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너무 버거웠다. 버거울 때 어떻게 도움을 청하고, 말해야 하는지 몰랐다.


우리의 부모님도 그 방법을 몰라 그렇게 싸웠는데 우리가 어찌 알았겠는가? 다행히도 배우자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었다.




- 계속 -


* 독자 여러분, 준비하는 시험으로 인해 다음 주는 쉬어 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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