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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원 깎아서.... 그냥 샀습니다.

by 아름다움이란

지난 이야기 - 40살의 동갑내기 부부,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업선포로 당황스러워하는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사업부지 선정을 위해 열을 올린다.

이 브런치북은 그 부부가 어쩌다 카페 사장이 되었는지 담을 예정이다.


03화 스펙터클과 서스펜스를 선물하는 그대




주말 아침이면 귀신같이 7시에 눈이 더졌다. 보고 싶은 만화를 선점하려면 언니와 동생을 제치고 가장 먼저 리모컨을 차지해야 했다. ‘배추도사 무도사’는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 힘을 모아 악당을 물리쳤고, 하늬는 지구 끝까지 달리겠다며 외로움과 슬픔을 뚫고 나아갔다. 그 시절 우리는 만화영화 속에서 정의와 용기, 그리고 우정을 배웠다.


이제는 TV 채널을 두고 싸울 일도 없다. 유튜브가 모든 걸 대신하니까.

그래도 아이들은 주말 아침이면 나보다 먼저 눈을 뜬다. 나는 그때의 우리 엄머처럼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간다.


“아침 먹자!”


아무 대답 없는 침실. 남편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매주 반복되는 주말 아침의 풍경이지만 한 번 불러 일어나지 않으면 분노게이지가 점점 올라간다.


평소 같으면 아내의 짜증이 곧 폭발할 것을 감지해야만 스르르 일어나는 토요일 아침 남편은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어나 서두른다.


'가자.'

'어디를?'

'우리 땅'


아! 맞다. 어제 땅 샀지? 고작 100만 원을 입금하고 우리 땅이 되어버린 문제의 현장에 직접 가봐야겠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 지역 카페에서 땅을 매매한다는 글 발견

2. 바로 전화를 걸어 퇴근 후 만나기로 약속

3. 만나서 얘기 나누는 사이 계속 문의 전화가 옴

4.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고, 그걸 감지한 땅 주인이 100만 원을 깎아주겠다고 함

5. 계약금 입금


장난하나!


며칠 전 단골 보세 옷가게에서 일었던 일이 생각난다.

"언니, 이거 너무 잘 어울린다."

"그래요? 한 번 입어볼까?"

"하나밖에 안 남았으니까 30% 세일해 줄게. 원가야. 대신 현금!"


'하나밖에 안 남았다고?'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이 집어갈까봐 손에서 내려놓지도 못한다.

'어떡하지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닌데. 아, 모르겠다.'


언니 계좌이체 되죠?

마치 단골 옷가게에서 티셔츠 하나 집어오듯, 100만 원 깎아준다는 말에 냅다 입금을 하긴 했는데 퇴근 후였기 때문에 땅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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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이라는 소리에 귀신에 홀린 듯 입금을 했는데, 막상 정신을 차리고 입어보니 나와 안 어울려 옷장에 처박혀있는 실패한 쇼핑'이 생각났다.

'야. 이건 티셔츠가 아니라고.'


불길하다.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

'역세권이라 입지? 나쁘지 않네. 그런데 땅은?'

두리번두리번 출처 네이버












'응, 여기'


정 중앙에 있는 저 손바닥만 한 것.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바로 여기였다. 모두 '설마?' 하는 생각을 할 것이라 예측한다. 어쩜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지?' 하고 두리번거릴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피식 웃음이 나오겠지. '저런 걸 돈주교 샀냐?' 하는 속마음을 들킨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토지의 정의는 '경지(경계 안의 땅)나 주거지 따위의 사람의 생활과 활동에 이용하는 땅'인데 생활에 이용 가능한 크기가 아니었다. 저런 걸 돈 주고 샀다고 생각하니 가히 충격이었다. 요리보고 조리 봐도 작아도 너무 작다. 게다가 모양은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땅의 모양도 아닌 삼. 각. 형.


난감함을 감출 수 없는 나와는 달리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는 남편의 표정.


나는 네 표정의 의미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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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찾던 작고, 안 예쁘지만, 인프라는 좋은 곳.

평소 서치력이 약해 찾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남편이 곧잘 찾아주었는데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지 어떻게 이런 까다로운 조건에 맞는 것을 찾아냈는지 신기방기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유동인구는 많았지만, 아무도 이곳이 주인 있는 땅이라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 후,

남편은 당장이라도 무엇을 시작할 것처럼 애달파하더니, 점점 마음의 평온을 찾은 듯했다.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안정감이 온다고 했다. 사업보다 당장 값아야 할 빚이 걱정되어서 구체적인 계획이 설 때까지 회사를 다니겠단다. 최근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 중에 가장 멋진 말이었다.

'그래. 죽으란 법은 없어. 그동안 착하게 살길 잘했다. '


신은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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