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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다정함을 파는 카페입니다.

by 아름다움이란

어쩌다 카페 사장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선택지 안에 없었던 소상공인으로 살고 있지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내려고요.

한 때 꼬마빌딩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에 편승해 꼬마빌딩을 짓기 시작하여, 카페를 운영하는 일상을 공유하려 합니다.


19화 결국은 사람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의 작은 골목에 자리한 일본 가정식 식당 이야기이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치에가 정성껏 만든 주먹밥과 따뜻한 커피를 매개로 낯선 이들이 모이고, 서로의 상처를 나누며 마음을 열어간다. 그곳은 어느새 ‘머물고 싶은 공간’, ‘다시 오고 싶은 가게’가 된다.


우리는 늘 특별함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평범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일상이 소중해지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가 보통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이 영화 속 세 여인은 나름의 아픔을 품고 있는 듯보이지만, 소소한 일상을 살아내면서 아픔을 달래고, 살며시 타인의 마음에도 손을 내민다.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어쩌다'들.

어쩌다 만난 사람, 어쩌다 하게 된 일,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카페 사장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되돌아보니 나의 현재가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목적 없이 넷플릭스를 기웃거리던 어느 날 결코 세련되거나 특별하지 않은 한 편의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잔잔하고 소소하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는 영화. 평범함이 절실한 시절이었기에 영화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다. 카페를 하자는 남편의 제안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 것은 삶에 정성을 다하는 주인공 사치에의 태도를 동경해서 그녀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쩌다 만나 한 편의 영화가 삶의 모티프가 되어 주었다.


나도 그녀들처럼 많은 이들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고 싶었다. 사치에가 빵을 굽고, 커피를 내려 사람들의 마음속 허기와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듯,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작지만 따뜻한 이름으로 남고 싶었다.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욱 진실하게 그 상황을 나에게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카모메 식당>은 아주 오래도록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카페는 <카모메 식당>에서 받은 영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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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정성스레 만드는 일은, 그 음식을 먹을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커피 원산지의 특성을 줄줄이 외고, 고소하고 풍미 있는 에소를 뽑아내기 위해 최적의 세팅값을 찾아내고, 거피빵이 몽글몽글 부풀어 오르도록 천천히 핸드드립을 내리는 기술도 중요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맛의 비밀은 바로 '정성'이다. 한 잔의 커피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면 그것 만한 비밀 레시피는 없다. 따뜻한 잔을 손에 쥐는 순간, 누군가는 위로를 얻고 또 누군가는 미소를 되찾는다. 커피는 각박한 우리의 일상을 이완시키고 평온함을 전하는 매개일 뿐이고, 삶을 조금 더 부드럽게 데워주는 정성이라는 최적의 온도를 만나야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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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끔은 다른 사람이 정성스럽게 내려 준 커피를 마시고 싶다. 쉬는 날이면 마음속에 담아둔 카페 리스트를 꺼내어 찾아가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평가하거나 비교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 다른 사람이 내려 주어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다. 이것이 카페 사장의 ‘카페놀이'다. 그 순간만큼은 사장이 아니라 단순히 한 잔의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머물 수 있다.


잔을 건네는 바리스타의 손길과 표정에서 온기를 느낀다. 건네받은 잔 안에는 위로가 넘치도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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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순한 말에 오래 버티는 힘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없다면 하기 싫은 일을 하나씩 줄여가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수 있겠다. 억지로 자신을 소모하지 않고 지켜가야 어떤 일이든 지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으니 나도 채우기보다 덜어내는 연습을 해 보려고 한다.


유행에 뒤처질세라 최근 트렌드를 따르려고 아등바등하며 신제품을 내놓기 바빴던 메뉴판부터 덜어내볼까 한다. 멋 내지 않은 맛으로 나를 보여주는 길을 선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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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카모메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사치에가 어떤 사람인지 느껴진다. 소박하고 단정한, 무심한 듯 세심한 그녀의 삶의 태도가 공간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다정함으로 물들어 있다.


분주한 세상 속에서도 잠시 멈추고 숨 고를 수 있는 작은 쉼표 같은 곳,

예술보다 일상이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하는 곳,

사물과 색감이 튀지 않아 사람을 가장 빛나게 해주는 곳,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사장님과 참 어울리는 곳이에요!'라고 말해준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다정함을 전하고 싶다.

어쩌다 만난 <카모메 식당>은 내 삶의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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