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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Mar 18. 2024

삶이 글과 공명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삶과 글의 만남.

2008년 겨울은 텍사스에 있는 Southwestern adventist 대학 기숙사에서 지냈다. 6개월 영어심화연수의 마지막 과정으로 5주 동안 그곳에서 테솔수업을 들었다. 가끔씩 교수님과 함께 공공시설에 견학도 가고 인근 대도시를 방문하기도 했다. 하루는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주의회 의사당에 갔다가 샌안토니오에 있는 알라모 요새에도 들렀다. 멕시코 전쟁의 접전지였던 알라모 요새를 박물관으로 만들어 운영 중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멕시코 전쟁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객관적으로 말하면 미국이 멕시코 땅에 와서 전쟁을 일으켜 그들의 땅을 빼앗았다. 그 당시 멕시코 전쟁을 반대한 지식인은 없었을까.


 멕시코 전쟁과 노예 제도에 항의해 숲 속에서 2년 동안 칩거 생활을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콩코드에 있는 호수 옆에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다. 텃밭을 일구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며 그의 삶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

소로가 월든 호수 옆에 지은 통나무집

그는 바로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이다. 소로는 인두세 거부로 투옥당했으며, 이 일은 노예운동에 헌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의 경험을 살려 쓴 책이 '시민 불복종'이다. 그의 일생은 물욕과 인습의 사회와 국가에 항거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생의 진실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는 삶이었다. 그의 책은 그의 삶과 사상을 대변했다. 1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그의 책을 사랑하는 이유다.

 글을 쓰고 나면 '글 속의 나'와 '현실의 나'가 일치하는지 검열을 하게 된다. '글 속의 나'는 성찰도 하고 반성도 하고 좋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도 한다. 그래서 '현실의 나'도 '글 속의 나'와 괴리감이 생기지 않도록 일종의 부채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가 쓴 글은 착한 족쇄가 되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글을 쓸 때 내 이야기가 빠지면 독자에게 공감과 울림을 주는데 한계가 있다. 내 마음을 보여주고 내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독자와 친해지기 쉽다. 일상 속의 작은 에피소드를 공개할 때 어디까지 써야 하는지 고민한다. 재미있는 일, 감동적인 일은 쓰기 편하지만 후회되는 일, 속상한 일은 쓰는 과정도 쓰는 마음도 불편하다. 나의 못나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다.


그러다 바꾸고 싶은 내 모습을 글로 쓰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개약속 같은 걸 하고 싶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글약속을 하며 지킬 수밖에 없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제적인 환경을 만들었듯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장치를 글 속에 만든다.


사소한 일로 딸에게 화를 낸 이야기를 쓴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몇 번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 또 화를 낸다면 후회만 반복될 게 뻔했다. 글을 덕분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딸과 더 깊은 대화를 하고 감정을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글이 주는 성찰과 글 약속 덕분에 같은 상황에서 조금 더 현명해진 느낌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마음의 성장을 멈추면 마음의 크기가 자라다만 어른이 된다. 마음의 크기는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 주름이 지듯 쪼그라든다. 나와 주변사람들을 돌아보며 마음을 늘리는 연습을 해야한다. 그 과정을 글로 쓰면서 성장하고 글과 내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소로는 자신의 사상, 글, 행동이 일치했던 사람이다.

소로의 사상은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시민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시대를 걸쳐 훌륭한 리더들에게 존경받고 영향을 준 이유는 그의 생각과 삶이 일치해서가 아닐까.

삶이 생각과 글을 반영한다면 글 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삶이 글과 공명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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