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 일기' 앱을 다운로드하여 하루 중 인상적인 장면을 담은 사진을 넣고 단 세 줄의 일기를 쓴다. 소중한 글벗 중 한 분인 실배작가님의 브런치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이번 주부터 기록을 시작했다. 첫날에는 기록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실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이튿날부터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데 익숙해졌고 셋째 날부터는 하루 중 2-3개의 순간을 기록에 남기기도 하는 수준까지 왔다.
세줄일기는 간단하게 쓰기엔 길고 자세히 쓰기엔 짧아서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좋다.그냥 사진을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해 외피에 국한하지 않고 이면의 진실을 담는 모습으로 진화한다.3월 6일의 세줄일기는 퇴고의 과정을 거쳐 '색깔의 단짝'이라는 시로 탄생해 '행복이 별건가요' 연재에 올려졌다.
하루 중 스치듯 지나가는 소소한 장면과 사소한 감정들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부여하니 또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생의 가운데 서서 멈춤 버튼을 누르고 내 생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기록되는 것 같다.
보물인데도 보물로 보지 못하고, 숨겨진 의미가 있는데도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발명하려고 하지 말고 발견하도록 애써라.
살갗을 보지 말고 뼛속을 보라.
- 안도현의 시작법 중 -
기쁨의 순간, 행복의 순간, 치유의 순간, 긍정의순간 등 하루 중 각기 다른 순간을 발견할 때 나와 가까워진다. 글을 쓰기 위해 이런 순간을 찾아내는 행위자체가 순간을 발견하는 동시에 나와 친해지는 시작점이다.
그 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만지다 보면 다른 사람의 시선과 목소리는 희미해지고 내면의 목소리가 선명해진다.
틱낫한 스님의 '마음 챙김은 일상의 매 순간을 깊이 있게 어루만지는 행위'라는 말처럼.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써 본다. 세줄일기에 이은 두 번째 발견하는 글쓰기 방법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촉감, 주위의 질감, 기분, 냄새, 공기의 온도와 습도, 빛의 밝기, 또 다른 감각들을 적어본다. 오감을 활용한 글쓰기가 생생한 글을 만들어준다는데 이견은 없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써 보았다.
잔잔한 클래식이 희미하게 들려오고 사이사이에 책장 넘기는 소리로 변주를 준다. 세월이 쌓인 책들이 만들어내는 고소한 냄새는 오래된 정원의 50년 된 나무 냄새와 닮았다.
책 속에 나란히 누워있는 종이는 거친 질그릇처럼 투박하지도 광나는 사기그릇처럼 매끄럽지도 않은 적당한 부드러움을 지녔다. 그 질감이 안정감을 준다.
도서관 창가에서 시작된 빛은 형광등으로 이어져 책을 보는 내 눈앞에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지혜와 지식을 발견하기에 적당한 밝음을 선사한다.
이곳에서는 언제나 부교감 신경이 우위를 차지하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아들이 입던 남색 체육복, 딸이 입던 하얀 플리스 잠바와 회색 야구모자는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 스파이더맨 코스튬처럼 이 옷 속의 나는 사회적 가면을 벗고 책 속 도시를 누비는 진짜 내가 된다.
이렇게 순간순간 기록된 경험과 생각들이 연결되어 또 하나의 글이 탄생된다. 하늘에서 빛나던 이름 모를 별들이 의미 있는 모양을 만들며 연결되어 별자리가 되는 것처럼.
같은 순간을 포착해도 누구에게 보이는 별이 누구에게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각자의 서사에 따라 프레임 안의 순간도 다르게 묘사되고 이면의 이야기도 다르게 만들어진다.
정진규 시인의 '별'에서 대낮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별은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하지만 시인은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라고 한다. 어둠을 겪은 사람만이 밝은 별을 보고 낳을 수 있다는 시인의 문장은 진정한 발견이다.
마지막 발견하는 글쓰기의 방법은 '정의 내리기 글쓰기'이다.
일상을 회상하면서 내가 포착한 순간 속에 있던 것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3월 5일 남편과 소박한 밥상으로 외식을 한 순간을 기록한 세줄일기에서 '남편과 외식'을 정의 내려보았다.
남편과의 외식
평소 오랫동안 바라보지 못하던 남편을
10분 이상 연속적으로 바라보는 시간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설레는 마음을 남편에게 투영하여
연애시절 감성을 떠올려 보는
자발적 회귀
다른 테이블에 있는 낯선 사람들을
관찰하고 싶은 호기심을 누르며
남편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성실의 순간
집밥과는 다른 새로운 맛을 느끼며
반복되는 일상에
신선한 조각 하나 맞춘다.
정의 내리기 글쓰기를 할 때는 고민하지 말고 쭉 써 내려간다. 7분 타이머를 설정하고 기억나는 문장을 빠르게 적어본다. 공책에 휘갈겨 썼던 '남편과의 외식'을 이 글을 쓰면서 살짝 고쳤다.
글쓰기 연습을 하려면 몇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시작조차 겁내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 10분발견하는 글쓰기를 거침없이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