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걸 좋아하지만 운전도 자주 한다. 딸아이 등하교 때 차를 태워주느라 매일 같은 길을 운전한다.
딸아이의 학교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걸리지만 버스를 타면 50분이 걸린다. 버스 정류장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배차간격도 넓어서 내가 태워주고 만다.
딸을 데리러 학교에 가면 차 안에서 간단한 음식을 먹일 수 있어서 좋다. 딸이 좋아하는 두부 알리오 올리오, 사과 샌드위치, 참치 김치볶음밥, 돼지갈비 김치찜 등 차 안에서 먹는 한 그릇 음식은 허기진 딸아이의 든든한 저녁이 된다.
차문이 열리고 딸은 "엄~마" 하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옆자리에 앉는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와 맛있겠다." 노래하듯 말하는모습은 아직도 어린아이 같다.
우리 차는 움직이는 퓨전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안식, 한식, 양식. 매일 메뉴를 바꿔가며 맛있는 요리가 제공된다. 후식으로 제철과일과 비타민까지. 어제는 딸이 나를 안으며
"난 엄마 바보야."
라고 말했다.
엄마바보면 엄마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이상하게 그 반대인 것 같은데 일단 고맙다고 했다.
아들도 대학생이 되고 나더니 엄마 도시락을 애용한다. 아들은 주말 동안 하루에 12시간씩 퓨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점심은 일하는 식당에서 먹어서 괜찮은데 저녁을 못 먹어서 배가 많이 고프다고 했다. 일요일 밤 9시, 아들이 알바를 끝내는 시간에 맞춰 저녁 도시락을 준비해 식당 앞으로 간다. 기숙사까지 태워주는 동안 아들은 내가 준비한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다.
"너 고 3 때도 안 싸주던 도시락을 대학생이 되고 나서 싸주게 되다니."
"그러게요. 돈 좀 벌어보겠다고. ㅎㅎ 기숙사에서 지내니까 엄마 밥이 얼마나 그리운지 몰라요. 주말 동안 많이 먹어놔야 돼요."
아이들이 내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볼 때면 가장 중요한 일을 끝낸 것처럼 마음이 뿌듯해진다. 특히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각자 중요한 일을 하러 갈 때 더 그렇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내 영혼을 위로해 주었던 엄마의 음식을 떠올렸다.
몸이 약한 내가 아플 때마다 엄마가 끓여줬던 노랗고 비린 장어국. 엄마는 마당에 있는 연탄 화덕에 큰 냄비를 올려놓고 살아있는 장어를 참기름에 볶은 뒤 장어가 잠기도록 물을 부어 반나절을 고았다. 노란 기름과 함께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 스텐 국그릇에 장어국 한 그릇을 담아 내게 건네주었다.
"소금 뿌려서 후루룩 마시라. "
비리긴 했지만 몸에 좋고 귀한 음식이라고 하니 꿀꺽꿀꺽 삼켰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엄마는 더 이상 노란 장어국은 끓이지 않으셨다. 대신 숙주와 고사리 같은 야채를 넣고 맑은 육개장 같은 장어국을 끓여주셨다. 장어를 냄비에 따로 삶아 살을 발라 넣고 야채와 양념을 넣은 덕에 비린맛은 없어지고 감칠맛이 더해졌다.
건더기와 함께 국물을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면 도시에 지친 몸이 조용한 산사로 들어섰을 때의 평온함이느껴졌다. 장어국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저작하고 삼키고 위장에 퍼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비교와 성취욕으로 차가워진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는일종의 의식이었다.
엄마의 장어국 한 그릇이면 학교 일에 지친 마음에도 육아로 시들어 가던 영혼에도 살이 붙었다. 나의 인생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더이상 엄마의 장어국을 먹을 수 없다.
엄마는 작년에 유방암 수술을 받으셨고, 엄마의 병원 진료가 있는 날에는 비행기를 타고 창원으로 내려갔다.
공항에 내려 미리 예약한 렌터카를 타고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갔다. 차를 렌트한 김에 미용실에 가서 엄마 머리도 다듬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곤 했다.하루는 뭐맛있는 걸사드릴까 고민하다엄마가 나에게 해주던 인생음식이 당신에게도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맞닿았다.
"엄마, 우리 마산 어시장에 가서 장어구이 먹자."
차로 20분을 달려 어시장 장어집에 도착하니 중년여성 대여섯 명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왠지 맛집을 잘 찾아온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참숯에 잘 구워진 장어를 입에 넣으니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았다. 엄마도 오랜만에 입맛이 돈다며 맛있게 드셨다.
그러다 밥과 함께 장어국이 나왔다. 별 기대 없이 한 입 떠먹은 순간 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엄마 장어국과 비슷한 맛이 느껴졌다.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며 그리워하던 엄마의 음식을 엄마와 함께 이곳에서 맛보다니. 장어국을 먹는 동안만큼은 엄마가 건강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엄마, 이거 엄마가 해주던 장어국이랑 비슷하다. 엄마 장어국 진짜 맛있었는데."
"그러네, 비슷하네."
엄마와 나는 장어구이를 눈앞에 두고 장어국 한 그릇을 먼저 비웠다.
밥을 먹고 과일가게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딸기도 사고 빵집에서 꽈배기와 곰보빵도 샀다.
"우리 딸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노."
오랜만에 외출 나온 엄마는 시장에 따라 나온 어린아이처럼 들떠 보였다.
엄마와 헤어지면서 엄마를 꼭 안아드렸다. 친정가족들에게 애정 표현 하는 게 서툴렀던 나는 이제 엄마를 보면 꼭 안아드린다. 엄마가 우리 딸처럼 내 품에 쏙 들어와나를 꼭 안아주신다.
언젠가 아들이 내게 말했다.
"아빠는 할머니 맨날 안아주는데, 엄마가 외할머니 안아주는 건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요."
"응, 엄마는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랑 스킨십이 없어서어색하고 쑥스러워."
"해보면 괜찮아요. 우리 안아주듯이 외할머니도 안아주세요."
아들의 말에 용기를 내야지 생각만 하다가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실행에 옮겼다.
엄마를 처음 안아준 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엄마 오늘 외할머니 안아드렸어."
"잘했어요. 엄마."
애정표현도 말씀도 잘 없으셨지만 음식으로 내 영혼을 달래주던 우리 엄마.
이젠 내가 원래 가진 사랑에 남편과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을 더해 엄마에게 나눠줄 수 있어 행복하다.
행복은 사랑을받을 때보다 나눠줄 때 더 깊어지나 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또 비행기를 타고 차를 렌트해서 엄마에게로 가련다. 엄마를 모시고 장어집에 가서 장어구이와 장어국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