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꿈꾸던 삶이 있다. 새소리에 잠이 깨어 새벽 산책을 하고 호수 앞 풀밭에 앉아 안개 낀 호수를 바라보는 아침. 월든 호숫가의 통나무집에서 아침을 맞았던 데이비드 소로의 삶처럼 말이다. 따뜻한 카모마일 차 한잔이 나무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이 손에 들려 있다면 그건 가장 순수한 행복일것이다.
호수공원의 10월은 나에게 순수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췄다. 파란 하늘과 그것이반사된 거울 같은호수, 나무 그늘과 바람이 나에게 복직하기 전 마음껏 행복하라고 했다.
단풍이 겨울로 숨어버리기 전에 나 홀로 마니산을 가기로 결심했다. 강화도까지 1시간을 넘게 운전한 후, 혼자서 마니산을 오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높이 올라가기보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로 했다. 몇 걸음 걸어가다나뭇잎 떨어지는 모습이 예쁘면그곳에 앉아 바스락 거리는소리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정상을 정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내가 있는 곳에서 즐기다 가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는 바위, 듬직해 보이는 나무가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르막을 오르던 발길을 돌리고 나무와 바위에게 바투 다가갔다.내 키보다 더 큰 바위 위에 서서 거인이 된 듯 발 밑 풍경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바위에 앉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시를 쓰기도 했다.
정상만 보고 올라가는 마음보다 과정에서 만나는 평범한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이나를 더 행복하게 했다.
10월에는 호수공원에서 호수예술축제를 한다. 몇 년 동안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호수예술축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올해는 남은 가을을 제대로 느껴 보겠다는 마음으로 축제 속으로 들어갔다. 불꽃놀이와 불꽃드론쇼가 있는 밤, 그 많은 인파 속에 친구와 엉덩이를 붙일 조그만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봤다. 드론이 수놓은 밤하늘 속 이야기는 피터팬을 만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놀랍고 신비로웠다.
4월부터 가고 싶었던 석파정 미술관이 드디어 공사를 끝냈다는 소식에 글벗들과 함께 한달음에 달려갔다. 박노해시인사진전의시를 품은 사진과 석파정 미술관의 그림, 그리고 미술관 옥상의 석파정은 서울은 정말 낭만적인 곳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복잡함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여유로운 곳도 있다며 서촌의 이방인인 나에게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산문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동화나 소설을 쓰는 건 더 어렵다. 더 깊은 글을 쓰기 위해 좋은 책을 읽고, 더 좋은 책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사유하고 글을 쓴다. 읽고 쓰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닿아 돌아가다 보면 언젠가 나의 이야기도 땅 위를 잘 굴러가겠지.
오늘도 나는 나의 뇌를 속인다.
'나는 좋은 글을 쓴다. 나는 울림이 있는 글을 썼다. 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을 썼다.'라고 말하며.
생각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상상!
돈도 들지 않고 나에게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일인데 안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특별했던 10월을 보내고 하루 하루 더 의미 있을 11월을 만든다.
한 줄 요약 : 산정상만 보고 올라가는 마음보다 과정에서 만나는 평범한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