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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Jan 01. 2025

새로 시작하는 두 세계


포르투갈의 낭만적인 도시 포르투에서 12월의 첫날을 맞았다.

도우루강과 아름다운 동루이스 다리.

아름다운 자연물과 구조물의 절묘한 어우러짐은 하늘이 허락할 때만 채색되는 붉은 노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고 싶게 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뇌리에 담았다가

눈앞이 까맣게 흐려질 만큼 힘든 날,

꼼짝없이 누워 있고 싶은 지친 날,

그런 날이 오면 기억 속에서 꺼내 지친 나에게 선물해 주고 싶게 했다.



수능을 끝낸 딸과 함께 세월의 그림을 그려가는 순간이 늘어간다.

춥지 않은 날은 산책을 하고 추운 날은 같이 카페를 간다.

음악회가 있는 밤은 음악당으로 손을 잡고 함께 다.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 떨어져 있던 시간을 보상받는 연인처럼, 꼭 붙어 깍지 끼어 잡은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나란히 걷는다. 얼굴이 닳을 때까지 빤히 쳐다본다.




결혼기념일에 아들은 프레지에 케이크를 사 오고 딸은 며칠 뒤 수건 케이크를 만들었다.

엄마의 요리 해방을 위해 아들은 볼로네제 파스타를 만들고 딸은 소고기 피자를 만들었다.

 딸의 입시까지 끝내고 나니 기량을 다하고 은퇴하는 운동선수처럼 요리에게서 은퇴하고 싶다.

 그 마음을 아이들에게 대놓고 내비쳤던가. 아이들이 요리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요리 수제자로 키우고 나는 맛평가단으로 남고 싶다.


딸과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저녁 손을 잡고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

춥다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곳. 겨울에도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달릴 수 있는 곳.

걷고 당기고 밀었다 쭉 편다. 난생처음 P.T. 를 받은 다음 날, 하체 근육들이 걸을 때마다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금도 놀라고 뭉친 근육들을 살살 풀어주며 화해하는 중이다.

노후대비로 연금만큼 중요한 근육을 키우기로 했다.


어느덧 2024년도 끝이 났다. 고3 수험생이었던 딸은 6년의 입시 공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젠 부모라는 보호막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때.

젖은 날개를 천천히 말리고 날기 연습을 끝낼 때까지

우리는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일만 남았다.

먹이를 물어주는 일도 아침을 깨워주는 일도 옛일이 되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시간이 다가온다.


둥지 속에 아기새가 떠나가려고 하니 엄마새는 또 다른 일을 찾아 나선다.

2025년은 나만을 위한 존재로 새로 태어나는 해다.

새로 열리는 두 세계의 시작이다.



제주 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남겨진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종교는 없지만 그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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