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난 장소를 고르자면 두말할 나위 없이 벨렝지구다. 그중에서도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탑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만이 가진 독특한 건축 양식과 스토리 때문일 것이다.
하늘을 찌르는 듯 뾰족한 고딕 양식과 우아한 르네상스 양식을 변형한 마누엘 양식이개성 있고 멋진 두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1497년 바스코 다 가마의 귀환을 기념하기 위해 마누엘 1세가 지은 제로니무스 수도원
마누엘 양식으로 지은 수도원 내부
대항해시대 신대륙을 향해 떠나기 전 바스코 다 가마가 머물렀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그 자리에 지어진 제로니무스 수도원,
희망의 배가 인도를 향해 힘차게 출발했던 해안가에 세워진 벨렝탑.
벨렝지구를 빼놓고는 포르투갈을 논할 수 없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탑이 리스본의 중심,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된 것은 마누엘 1세가 추구한 개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감탄과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개성.
수도원 내 성당 내부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수도원 내부 성당은 리스본 대지진에도 피해가 거의 없었던 곳이다. 바로 독특한 건축양식 때문인데 야자수를 닮은 뻗어나간 가지 모양의 천장이 내진 설계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야자수 모양의 천장. 수도원 내부에 바스코 다 가마가 잠들어 있다.
수도원에서 해안가로 10분 정도 걸어 나가면 항해왕 엔히크와 바스코 다 가마를 기념하는 벨렝탑이 있다. 마누엘 양식의 멋진 벨렝탑의 1층은 한 때 정치범 수용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밀물 때 물이 들어오면 숨을 쉬기가 힘들어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감옥이 아니었을까.
바스코 다 가마를 기념하기 위해 행운왕 마누엘 1세가 세운 요새이자 감시탑
거기다 포르투갈을 빵의 나라로 만든 원조 에그타르트, 포르투갈에서 가장 맛있는 나타 가게가 제로니무스 수도원 바로 앞에 있다.
지진 이후 왕권이 흔들리고 나라 살림은 어려워졌으니 세금으로 운영되는 수도원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 후 수도사는 수도원에서 쫓겨났지만 수녀들에 대해서는 동정심이 일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착한 수녀들은 수도원에 머물게 하자는 게 중론이었고 다행히 수녀들은 수도원에 기거할 수 있었다.
수녀들은 수녀복을 빳빳하게 다리는데 계란 흰자를 사용했고 남은 노른자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계란 노른자에 크림을 섞어 커스터드를만들었고 그것을패스트리에 넣어 타르트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포르투갈어로 나타,영어로 에그타르트의 시작이다.
하루에 몇 천개를 만든다는 나타 가게
바삭한 나타와 깊은 맛의 라떼의 조합
생계유지를 위해 수도원 앞에서 나타를 팔던 수녀들은 이후에 현재의 가게 주인에게 비법을 전수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 나타 가게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에그타르트를 파는 곳이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에그타르트 가게를 찾아가먹어봤지만 이곳의 나타와는 비할바가 아니다. 마카오의 에그타르트는 살짝 느끼했지만 벨렝지구의 나타는 느끼함 없이 담백하고 고소했다. 바삭하게 씹히는 첫맛과 입에서 녹는 커스터드의 부드러움이 정말 일품이었다.
수녀들의 나타 레시피를 아는 사람은 전 세계 4명뿐이라는데 이곳 나타의바삭함의 비법은 감자라고했다.
바스코 다 가마가 항해를 떠났던 곳에 세워진 또 하나의 건축물, 발견 기념비.
항해를 마치고 살아 돌아오는 사람은 1/3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항해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전염병을확산시키는걸 막기 위해 14일간 격리하도록 했는데 라틴어로 14일을 뜻하는 quattuordecim (쿠안트투오르데침)에서 격리라는 뜻의 영어 단어인 quarantine(쿠어런틴)이 유래했다고 한다. 500여 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기간의 격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니 놀랍다.
항해 왕 앤히크 사후 500년을 기념해 세워진 발견기념비
몇 백 년이 지나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는 건 그것이 개성과 정체성을 가졌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누군지 말해 주는 개성이라는 게 있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 어둡고 부정적인 것보다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밝고 긍정적인 것이 그의 개성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한 사람의 개성이 독특함보단 특별함이었으면 좋겠다.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 그를 떠올릴 때
그가 싫어하는 행동,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말투, 몸짓, 웃는 표정, 깔끔하고 정돈된 생각, 웃음소리, 사람을 대하는 방식, 이야기를 하며 쳐다보는 표정,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던 장소가 미소와 함께 떠오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