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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Dec 14. 2024

대지진 후 재건을 꿈꾼 그들과 우리는 같다.

리스본의 대지진과 한국의 계엄

신대륙 발견의 꿈을 실은 배를 타고 떠난 탐험가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콜럼버스다. 그는 거리 계산 오류를 발견한 포르투갈 국왕에게 거절당한 후 스페인 국왕의 후원을 업고 항해를 떠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죽을 때까지 인도라고 믿었지만 진짜 인도를 발견한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가마이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리스본 첫날 투어 가이드 이름도 바스코였다.


폭설로 인한 결항 대란으로 리스본의 이틀이 증발해 버렸다. 그 이틀 사이 예약해 둔 투어는 취소하거나 연기했지만 리스본 근교 투어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한국어 투어는 마감된 상태라 쉬운 영어로 설명해 준다는 후기를 믿고 영어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가격도 한국어 투어의 반값이니 영어 실력도 점검하고 돈도 아끼는 두 마리 토끼에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도착 다음날 아침 8시 픽업인 다소 무리인 듯 보이는 투어였지만 시차로 인해 아침 5시 반에 기상한 우리 가족은 벌써 전망대 산책을 끝내고 투어 차량을 기다렸다.  

리스본의 흐린 아침 7시의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산타루치아 전망대


바스코는 이탈리아 모델처럼 큰 에 긴 곱슬머리를 멋스럽게 묶고 나타났다. 유럽인 특유의 엑센트가 없는 정확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자신을 바스코 다가마의 사촌이라고 소개했다. 


바스코의 밴을 탄지 몇 분이 지나고 리스본 시내를 빠져나가려고 할 때 거리에 있는 동상을 보며 바스코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상의 인물이 리스본 대지진 이후 도시를 재건하는데 큰 공을 세운 폼발 후작이라고 했다.

폼발 후작 동상
동상 아래 지진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    출처-네이버 블로그

1755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축일에 도시 전체를 무너뜨린 잔인한 지진은 리스본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 축일을 기념하러 많은 사람이 모였던 성당도, 바스코의 조상이 살았을 마을도, 주제 1세 왕이 살던 궁전도, 바스코다가마의 대항해시대의 사료를 보관한 왕실도서관도, 수많은 예술품과 문화재도 단 7분 만에 형체가 사라진 조각난 잔해로 둔갑해 버렸다.


강도 9.0, 강력한 수평 지진이 7분 동안 계속되었다. 리스본에 서있던 건물 85프로가 사라졌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리스본에 15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일면서 피해는 더욱 크고 처참했다.


진동이 멈추고 3분 후 두 번째 지진이 시작되었고 두 시간 후 세 번째 지진이 일어났다. 당시 리스본 인구 20만 명 중 삼분의 일인 약 6만 명이 사망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축일을 기념하기 위해 성당에 모여 있어 인명 피해는 더욱 컸다고 했다. 이 지진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비극적이며 큰 인명피해를 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바스코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가 지진을 말할 때의 목소리와 뉘앙스는 지진으로 인한 아픔과 트라우마를 감추지 못했다. 리스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진이 얼마나 큰 아픔과 고통으로 남았을지 그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대변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그냥 사라진다 건, 집도 공원도 도서관도 학교도 남김없이 사라진다는 건 나의 세계가 잘려 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리스본 대지진은 지진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나라 전체의 기운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는 자연재해가 왕의 부덕의 결과로 치부되었고 대지진은 신의 천벌로 여겨져 절대 왕권은 크게 약화되었다. 


현재의 코메르시우 광장에  있었던 왕궁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고 해돋이 구경을 위해 궁전을 비웠던 국왕 주제 1세는 목숨을 지켰지만 평생 폐소공포증을 앓았다.


심약해진 국왕은 도시 재건의 전권을 동상의 주인공인 폼발 후족에게 일임했다. 바스코는 그가 리스본의 재건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많은 시민들에게 돈을 착취해 부를 쌓아 비판에 휩싸였다고 했다.


자연재해보다 사람으로 인한 피해가 더 많은 우리나라에선 계엄령으로 인권이 무너졌던 민주주의의 대지진이 있었다.

민주주의의 대지진 후 사람들은 열심히 뼈대를 세우고 벽돌을 쌓고 지붕을 올려 민주주의를 재건했다.


도시 하나의 재건이 아닌 전 나라의 틀을 다시 세우는 일은 험난하고 힘겨운 과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어진 사회가 안정적이고 견고하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은 쌓아 올린 사회가 언제 다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서로를 불신해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집을 짓는 총책임자가 갑자기 세계를 흔들어 지진을 일으키려고 한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을 지켜주던 세계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트라우마에 힘들어하면서도 지진과 무너짐을 막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했다.


무너진 왕궁 자리에 왕궁 대신 코메르시우 광장을 만들고 대지진 당시 국왕인 주제 1세의 기마상을 세워 아픔을 기억하고자 한 포르투갈 사람들.


광장이 시작하는 입구에 대지진으로부터의 회복을 상징하는 아우구스타 개선문을 세우고 여섯 개의 기둥에 재건의 대명사 폼발 후족과 대항해시대의 영웅 바스코 다가마를 새겨 희망으로 기억하고자 한 이들.

대지진 당시 왕 주제 1세 기마상과 개선문
대지진으로 궁전이 무너진 자리에 코메르시우 광장이 들어섰다.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개선문의 앞과 뒤
코메르시우 광장 광각뷰


친절하고 여유로우면서 단단하고 긍정적인 리스본 사람들품성은 대지진을 거치며 풍파와 고통을 희망으로 빚으며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 아닐까.


추운 날씨에도 응원봉을 들고 여의도로 달려가는 시민들,

그곳엔 다시는 계엄을 트라우마로 만들지 않고

희망으로 바꾸겠다는 일념을 가진 이들이 있다.


탐험을 떠나기만 하면 소식이 없어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던 아프리카에 희망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결국 가닿은 포르투갈인처럼 우리는 또 이 순간을 희망으로 바꾼다.


아우구스타 개선문에 새겨진 그들의 영웅처럼

여의도를 지키는 시 한 명 한 명이 우리의 개선문, 광화문 기둥에 아름답게 새겨져야 하지 않을까.


한 줄 요약 : 리스본 대지진은 막을 수 없었지만 여기 이곳 민주주의 대지진은 국민이 막고 있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리스본 근교  

왕의 여름 별궁으로 이용된 신트라의 페냐궁전



페냐 궁전의 내부와 뒷편
요새를 본따 만든 페냐 궁전
절벽마을로 불리는 아제나스 두 마르
유럽의 서쪽 끝 호카곶
작은 바닷가 마을이자 여름 휴양지 카스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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