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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Dec 24. 2024

낯섦을 즐기는 시간

리스본의 크리스마스는 11월 부터

여행은 나를 아는 이가 없고 생경한 풍경으로 가는 낯섦을 즐기는 과정이다. 늘 가던 익숙한 동네아닌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야 하는 아름답고 신선한 곳으로 떠나는 것. 그 설레는 일탈의 이유가 익숙한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것일까. 일상을 일탈로 바꾼 쉼을 위해서일까.


대륙을 건너 떠나는 여행은 업무가 되기도 한다. 업무를 하달받은 김대리처럼 조건에 부합하는 숙소를 찾고 맛집을 검색하고 방문할 명소를 확인한다.


짧은 기간 안에 알차게 많은 것을 보고 먹고 즐겨야 하니 일정도 짜고 예약이 필요한 곳은 미리 예약도 한다. 엑셀표를 만들어 여행 계획을 정리하는 건 파워 J들에겐 어쩌면 흐린 날에 우산을 준비하는 것처럼 당연한 과정이다.


반대로 여행의 한 조각에도 신경과 시간을 쓸 수 없는 사람은 여행사에게 온전히 내 여행을 맡긴다. 가이드가 하는 설명과 가이드가 허락한 시간에 만족하며 일상으로 돌아가서 써야 할 에너지를 비축한다.


둘의 가운데쯤 서 있는 나는 리스본으로 가기 전 당일 현지 투어를 신청했다. 첫 해외여행으로 태국 패키지여행을 하며 강제쇼핑에 질렸고 자유여행으로 미국과 독일을 다녀온 후 그들의 생활을 피상적으로 구경만 하다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은 후부터였다. 그 후론 현지 투어를 한 번 이상은 신청해 가이드를 통해 생생한 현지 소식과 역사듣곤 한다.


유튜브 쇼츠는 보면서도 시간 없고 귀찮다는 핑계로 3일 전에 리스본 숙소와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가는 기차를 예약했다. 나이가 찰수록 여행 준비를 위한 공간은 빈다. 덜 채워진  여행가방처럼  미리 준비한 엑셀파일도 없고 맛집리스트도 없다. 구글지도만 있으면 갈 곳, 먹을 곳은 어느 정도 해결되니 빈 공간 그대로 리스본으로 떠났다.


리스본의 낮은 자유롭지만 우아하고 밤은 화려하지만 평화로웠다. 하루에 2만 보 이상 걸으면서도 밤늦게까지 호시우광장 크리스마스 마켓의 선명한 활기참을 눈에 담았다. 사진은 눈에 담아름다움을 넘어설 수 없으니까.

호시우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


백 년의 서사를 간직한 리스본 구도심에 애착이 생겨 낮에 갔던 곳을 밤에도 가고 다음 날에도 들렀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무미건조한 일상이라면 이 도시는 20대에 새로 사귄 친구 같다. 이방인인 내가 부드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로 다가온다. 내가 세상의 전부라 여기던 곳이 세상의 티끌과 같은 작은 조각이라는 것을 말해주며 나를 흔들어 깨운.

밤의 전망대 - 리스본에는 여러 개의 전망대가 있다
낮의 전망대

리스본 구도심의 모든 것은 옛 모습 그대로 중후하고 예술적이다. 오직 각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만 새로움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머물고 흘러다니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물결은 유속의 빠름과 느림을 조절할 뿐 결코 멈추지 않는다. 광장에 머물고 골목으로 흘러 다니는 사람들의 물결을 아우르며 리스본은 큰 바다가 된다. 그 바다를 항해하는 나는 '노인과 바다'에서 청새치를 처음 발견한 노인처럼 매일 설레고 긴장했다.



리스본의 중심 바이샤 시아두 지구

리스본 대성당
산타후스타 엘리베이터
가장 핫한 아우구스타 거리
예쁜 골목길
상조르제성의 밤
숙소로 가는 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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