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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쓰고 사유하고

by 리인

과거를 쓰면서 내게 물었다.


지나간 과거는 왜 자꾸 쓰는 거야?


또 다른 내가 대답했다.


과거는 현재니까. 과거의 내가 연결되어 현재를, 나를 낳았으니까.


그럼 과거를 쓰면 현재가 달라져?


과거의 나를 쓰는 건 나를 해석하는 거야.


해석한다는 건 풀어서 깨닫고, 깨달은 걸 설명하는 거잖아.

그때의 상황을 풀어서 그때의 감정을 깨닫고 현재의 나에게 이성의 영역에서 설명해 주는 거지.


그래서 나를 이해시키고 같은 상황이 왔을 때

감정이 아닌 이성의 힘을 키워 다르게 행동하게 하는 거지. 의식이 살아있게 하는 거지.


그래서 현재가 달라졌어?


미래가 달라지고 있어.

과거를 인식하고 현재를 의식하고 있으니 미래가 조금씩 달라지는 거지.

그러니 미래에서 보면 현재도 과거도 달라져 있을 거야.


그럼 너의 현재는 어때?


재미있어.

난 원래 잡생각, 딴생각, 말도 안 되는 상황극 설정 대마왕이었는데

다른 사람, 물질적인 것에 대한 불평, 불만이 내 정신을 오염시킬 틈이 없어.

사유하느라 바빠서. 그걸 쓰느라 재미있어서.

질문과 답을 반복하던 나는 잠깐 질문을 멈추고 가로등 앞에서

사유하며 쓴 글을 꺼내본다.

산책하다 가로등을 보고, 운전하다 앞차를 보고, 아들 입대하는 날 비바람을 견디고 떨어지지 않은 벚꽃을 보고 사유한다.


의식과 의식 사이 잠깐 무의식이 침범하는 공간이

공허한 어둠 속 블랙홀이 아닌

의미를 만드는 또 다른 별이 된다.


사유는 내 의식의 블랙홀을

별로 만들어준다.

내 글을 반짝이게 해 준다.


나는 오늘도 사유하러 나간다.

또 다른 별을 만나러.


너는 가로등


너나들이의 사유


나오는 빛줄기가 보이지 않는다

내뿜지 않는다

그저 덮어준다


홀로 서있을 땐 어둠만 가시게 하더니

줄지어 있으니 환함이 부시다


태양이 나오면 강도를 낮추고

태양이 들어가면 강도를 높이는

그것이 우리가 아는 겸손함

빈 곳을 메우는 사소한 일꾼


가끔 나오는 밤하늘 보름달대신

땅에 가까운 지상달이 돼주고

달님을 흠모하는 구름에 가려진 달을 위해

하룻밤 보름달이 되어준다


이렇게 말없이 다정한 것을 보았는가

가까이 가도 뜨겁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새벽이 되면 곧 잠잠하고 침잠한다.

너의 그것은 잠시 내 속에 보관해 둔다.


뭔가 하고 나면

주고 나면

티 내고 싶은 사람들은 이것을 닮지 않았다


밤 산책을 하는 내 등을

조용히 쓸어주는

너는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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