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의 불안을 채우던 호기심이 영어에 발화되어 취미이자 일이 된 지 오래다.
새로 복직을 하고 동료 교사 몇 명과 교사 영어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매일 영어 교재의 한글 뜻을 보고 영작한 것을 영상으로 찍어 카톡에 업로드한다. 오프라인 모임은 2주에 한 번 1시간 정도뿐, 그저 혼자서 매일 공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다 소로우의 글을 직접 읽고 싶어 소로우의 글을 번역했다는 새벽독서 리더님의 말을 듣고 언어 자체를 배우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것에 대해 물벼락을 맞았다.
나는 왜 영어를 오랫동안 배우고 있는가.
10년 후, 20년 후 영어로 가장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언어자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도구로 더 큰 우주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위한 작은 실천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로 매일 쓰는 나의 글을 영어로도 말해보기로 했다. 챗gpt를, 언어를 도구로 이용하되 나의 생각을 담기로 했다.
내 글을 아침마다 영어로 번역해 카톡인증방에 올린 지 일주일째다. 시간의 틈을 내어 인식의 틀을 깨고 의식을 확장하는 생각을 다른 언어로 담는 과정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관찰과 사유다.
사랑의 시작도 관찰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배움의 시작도 관찰이다. 어떤 것을 배우려면 먼저 그것을 집중해서 관찰해야 한다.
관찰해야 알게 된다. 관찰해야 사유하게 된다.
위대한 관찰을 위해선
좁고 날카롭게 보는 시선과
넓고 크게 보는 시야가 필요하다.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기 위해선 비판적인 책과 사유가
아우르는 시야를 가지기 위해선 세상을 넓게 보는 철학과 사유가
거기에 세상에 온기를 더할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되 이면의 것을 보고
현상 그대로를 보되 그 이상의 것을 보는
객관적인 사실을 보되 재해석할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을 가지는 것.(엄마의 유산 참고)
삶을 관찰하고 사유하며 선(착함)을 더해 하나씩 배워간다.
나를 위해, 세상을 위해, 더 약한 자를 위해 선을 더한 관찰은 온기를 더해 삶에 더 큰 우주를 만들어줄 것이다.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작은 우주에 별 하나씩을 채워가는 것과 같다.
관찰하고 읽고 사유할 때마다 작은 빛이 하나씩 생기며 삶이라는 우주의 스펙트럼도 다양하고 깊어진다.
그 길에 철학자의 원서를 그대로 사유에 담을 수 있다면 다른 빛깔 하나가 더해질 것이다.
나는 오늘도 부족한 나를 깨달으며 관찰하고 사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