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의 결은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다.
어느 날 새벽 처량하던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아버지의 얕은 잠을 훔칠까 봐 두려워했던 순간도
숨죽여 마시고 뱉었던 들숨과 날숨도
모두 글로 쓰이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불면이 검은 밤을 가득 채워
온 식구를 깨우던 날부터
삶은 우연이었으나 글은 필연이었고 때때로 감정은 악연이었다.
악연을 필연으로 풀어 내밀한 나를 만나고 그것을 쓰는 일은 나를 나답게 했다.
실체를 몰라 두려운 악연의 순간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심연의 나와 인연을 만들어 갔다.
실체를 부정할 때 괴로워하는 사람은 적어도 실체의 존재를 인식한다. 나는 그 밤의 숨과 싸늘한 긴장감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그 내재된 욕망이 노트북 앞에 앉게 했고 일상의 재료로 글의 그릇을 채워 나갔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건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 내 이야기가 아닌 척 하고 싶었던 철없음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글을 만나게 해준 어릴 적 내 고통을 소중히 여긴다.
그것은 소리 없는 내 글에 목소리를 입히고
색깔 없는 내 글에 색을 입혀 나만의 결을 만들었다.
고통 없는 사랑이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가족이 겪어온 순간들을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고통이라고 명명했다.
글은 내 세계를 세웠다.
내 영혼의 대지 위에 내 세계를 세웠다.
그 시작은 검은 밤의 숨과 싸늘한 공기였다.
결국 내 세계와 아버지를 연결한 것은 글이었다.
어제 엄마와 통화하며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썼다고 처음으로 말했다.
"엄마, 아버지가 내 글 보고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어."
"아버지가 많이 달라지셨어. 나한테도 엄청 잘해준다."
"진짜? 아이고 우리 엄마 말년복이 터지셨네."
엄마와 함께 크게 웃는다.
엄마의 목소리에 묻은 에너지가 휴대폰 스피커를 뚫고 퇴근길의 내 영혼에 까지 전달된다.
내 영혼은 엄마의 밝음을 먹고 한 뼘 더 단단해졌다.
단단해진 영혼이 구슬처럼 내 마음속에서 굴렀다.
어린 날의 검은 밤, 소리가 밤을 깨울까 봐 불안해하던 영혼은 책과 글의 찰나가 쌓여 그 책의 두께와 무게만큼 묵직해졌다
오늘도 책과 글을 포개는 새벽의 순간에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참 잘 견뎌왔다고 아버지와 엄마를 외면하지 않고 그 곁에 있어서 잘했다고 바가지머리를 한 나를 쓰다듬어 준다.
아직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서있는 나를 안아준다.
그리고 다시 이 글을 쓰는 내 등을 토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