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렐리우스 명상록
2년의 휴직 기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의 결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시끌벅적한 모임에 나가 수다를 떠는 것보다 책 이야기, 글 이야기하는 것이 좋고
조용히 책을 읽고 혼자 사색하고 산책하는 시간이 귀하다.
책을 읽다 보면 글이 쓰고 싶어 어느새 노트에 글을 쓴다.
나는 아직도 노트에 먼저 생각을 옮긴다.
볼펜을 들고 나의 손바닥 두 개 만한 작은 다이어리에
글자를 수놓기 시작하면 생각이 꿰어져 나온다.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다 '엄마의 유산' 북토크에 참가하게 되었고 '엄마의 유산'책을 읽고 그때 만난 지담 작가님과 다른 작가님들을 브런치와 줌에서 만나면서 철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엄마의 유산'을 알기 전에는 '마흔에 읽는 니체' , '잠들기 전에 읽는 쇼펜하우어'처럼 해석본을 읽었지만 지금은 철학자의 책을 직접 읽게 되었다.
그래서 읽은 책이 논어, 파이돈, 향연, 인생론(쇼펜하우어), 장자, 키루스의 교육이다.
철학책을 읽으면서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나를 깨고 싶은 욕망이 분수처럼 내 안에서 솟구쳤다. 아직도 감정의 지배를 받고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지 못하며 단단하지 못한 영혼을 가지지 못한 나를 깨고 싶은 욕망이.
어제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런 나에게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채찍을 만들어 등짝을 내리친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노트를 펴고 필사를 한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학교에서 영어 학원에서 지인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고 느꼈던 사람이 다른 결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정신의 체를 거르지 않은 말이 들렸다. 그러다 오늘 아침 이 문장이 내게로 왔다.
나는 그들 중 누구에게서도 해를 입을 수 없으며 누구도 나를 저열함으로 떨어뜨릴 수 없다.(주)
서로 반목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며 어떤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미워하는 것은 그를 반목하는 것이다.(주)
내가 다니는 영어 학원에 6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분이 있다. 그 여성분은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퇴직했다는데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관점이 아주 명확하게 부정적이다.
우리 그룹에는 교사가 세명이나 있다. 중학교 영어 교사 한 명, 초등학교 영어 전담 교사 두 명.
그녀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마지막에 한 마디씩 덧붙였다.
"Terrible job."
옆에 앉은 사람의 직업에 대해 저렇게 강렬한 부정의 단어를 뱉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모순적이게도 우리 그룹에서 그녀와 제일 친해 보이는 사람이 초등학교 교사였다.
둘의 관계를 깊이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과 친한 사람의 직업에 대해 "terrible"이라는 검은 단어로 칠해버리는 건 어른의 행동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terrible"에 대해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이니 그냥 그대로 두었다. 그러다 오늘 이 문장을 만나면서 그 순간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 중 누구에게서도 해를 입을 수 없으며 누구도 나를 저열함으로 떨어뜨릴 수 없다.(주)
그녀의 "terrile"이라는 말은 내가 긍정하지 않았으니 내 일을 끔찍한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녀의 "terrible"은 그녀의 입으로 나와 그녀의 귀로 흘러갔고 그녀의 정신과 다시 결합되어 다시 부정의 볏단을 마음에 쌓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선이 무엇이며 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주)
그들에게 화를 내고 미워하는 건 내 안의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순리대로 중력대로 흐르는 내 몸속 피를 거꾸로 흐르게 하는 것처럼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이다.
선과 악의 구분의 주관적임과 모호함.
내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에게 악이 아닐 수도 있어서
내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에게 선이 아닐 수도 있어서
사소한 선과 악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나의 영혼이 육체에게서 자유로워지게 하며 이성을 자립시킬 수 있는 건 독서와 사유와 사색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이성과 똑같은 신성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이성은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말하며
신성은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함,
신과 같은 성격을 말한다.
똑같이 부여받은 이성과 신성은 생각과 행동에 따라 고양되고 사장되기도 한다.
자신만의 우주 안에 어떤 이성과 신성을 들여놓을지가 진정한 어른의 일이다.
나의 이성과 신성을 끌어올리고 싶은 욕망에 새벽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제 대학생이 되고 군인이 되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
나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는 300명이 넘는 남의 집 귀한 자녀들에게
좋은 부모, 좋은 교사,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커서이다.
우주를 보존하는 것은 변화이며 단순한 원소들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이루는 보다 큰 형성물들의 변화가 우주를 보존하는 것이다.(주)
아침 두 시간의 독서와 토론은 나에게 우주를 보존하는 일이며 곧 변화이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의 변화로 나의 우주의 작은 한 부분도 소멸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아직 알지 못한다.
내 안의 우주를 이루는 원소,
원자의 결합과 반응에 의한 그 형성물의 변화에 의해
내 우주는 내 안에서 확장되고 팽창되며 다른 우주에까지 뻗어나가는 것이다.
짧은 인생에 후회 없는 죽음을 생각하는 메멘토 모리의 마음으로 늘 감사하고 기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주의 규칙이다.
지난달 열병과 위병으로 내 정신을 얼어붙게 했던 정신의 냉기가 물러갔다. 이제 내 정신은 관점을 전환하는 연습으로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있다.
얼었던 정신이 깨어나고 내 글의 계절에도 봄이 시작되었다. 우주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빛을 낳는 건 어둠이라는 간단한 진실, 어둠이 없으면 별이 발현되지 못하는 것처럼 고통과 포기의 유혹 없이는 나의 우주 안에서도 다시 빛을 낼 수 없다.
고통도 빛의 일부분이다.
그 고통이 우리가 더 큰 빛을 내게 하는 순환을 일으킨다.
주) 아우렐리우스, 명상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