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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과 평가 대신 감사함과 성장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을 읽고

by 리인


우리는 자신이 설정한 원근감에 따라 인생에서 만나는 것의 색과 결을 결정한다.


자신을 볼 때는 너무 가까이 서서 객관성을 잃고 다른 사람을 볼 때는 멀리 서서 바깥의 포장지만 보고 내면을 보지 않을 때가 있다.


인간은 자기 이상의 것을 볼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크기로 다른 사람을 본다.


지력이 열등한 사람은 위대한 사람의 개성 속에 가장 낮은 면, 위대한 사람의 약점과 성격, 기질의 결함만을 볼 뿐이다.


정신을 갖고 있지 않은 자에게는 모든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주 1)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내가 일으키는 일들과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내 삶에서 아끼고 보살피는 일에 따라 만나는 사람도 달라지며 나의 지력과 관점에 따라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시력도 달라진다.


가까이에 빛을 내는 사람이 존재할지라도 그 빛을 알아볼 수 있는 정신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빛을 지나치는 것과 같다. 빛을 알아볼 수 없다면 빛 속에 숨겨진 지혜를 내 것으로 배워올 수도 없다.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거리감을 느끼며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의 정신보다 행동에 따르는 피곤과 고통을 먼저 가져와 부정적인 생각을 주입해 예단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마주할 때도 인생을 대할 때도 사랑은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현재의 상황에 감사하며 이겨내게 하는 힘이다. 애정없이 바라보는 인생에 아름다움이 있을 수 없고 사랑없이 대하는 인간관계에 빛의 따스함을 느낄 수 없다.


가끔 우리는 사랑과 평가를 착각하기도 한다. 내 인생을 사랑한다면 평가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불만을 갖지 않고 지지하고 감사하는 것인데 말이다. 내 인생과 내 사람에게 평가가 간섭으로 변하는 순간, 행복도 익숙함이란 박테리아로 인해 맛과 향이 변질되기 시작한다.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도 사랑대신 간섭과 평가가 개입되면 감사함대신 불평만 가득하게 된다. 그러다 불행을 목도하고 나서야 그것이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감각, 주관이라는 안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나만의 안경을 통해 세상을 선명한 행복으로도 보고 흐린 불행으로도 보는 것이다.


익숙함과 평가는 우리의 인생에서 경계해야 할 二賊(두가지 도둑)이다. 거창한 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국어사전에는 평가와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단어가 있다. 성장.

평가는 순간적이고 부정적이고 트라우마적이지만 성장은 계속적이고 긍정적이고 치유적이다.


익숙함 대신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 있다. 감사함.

익숙함은 때론 편안함을 가장한 지루함, 당연함, 권태로움이 될 수 있지만 감사함은 마음의 평화, 심리적 평온, 사랑의 샘물이 된다.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의 의지와 지성 사이의 균형 있는 조화가 필요하다. 지성은 의지의 길을 밝혀주는 빛이요, 안내자이다.(주 2)


성장에 집중하면 평가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멀리하게 된다. 여기서의 성장은 남의 성장이 아니라 나의 정신적 성장과 신체적 성장이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나의 부족한 지성이 쌓여가는 것 같은 뿌듯함이 생긴다. 지성이 성장할 때 느끼는 쾌락은 체감 강도가 가장 크다. 그래서 더 행복하다.


의지가 앞에서 끌고 가는 길에 지성이 뒤에서 밀어준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지성과 의지의 균형을 이룬 사람의 중심은 외부에 있지 않고 자신의 내부에 있다. 성장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독서를 하며 시간이라는 나태한 짐승(주3)을 길들이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설레기 시작했다. 퇴근 후 피곤에 지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져 있어도 나태한 짐승을 길들이고 있다는 생각은 나를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해 준다.


삶의 지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는 현재와 미래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해치지 않도록 현재와 미래 양쪽에 적당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주 4)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즐기라고 한다.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계획적으로 살아가라고 한다. 성장 그 자체를 즐긴다면, 지력을 키우는 것을 쾌락으로 느낄 수 있고 그는 현재를 즐기면서 미래를 보살피는 두 개로 보이지만 하나인 건실한 나무를 키울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익숙함과 평가 대신 감사함과 성장의 나무를 키우기 위해 책을 읽고 사유하고 대화한다.


주 1,2,4) 인생론. 쇼펜하우어.

주 3)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와즈 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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