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대로 맡기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다. 무언가 마음에서 결정하고 나면 곧바로 행동한다.
할까 말까, 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불현듯 하자, 가자는 마음이 들면 1분 안에 행동해 버리는 무모한 장수의 심리가 있다.
4월에 피는 벚꽃이 예쁜지 7월에 피는 배롱나무 꽃이 예쁜지를 묻는 물음에 답하는 것처럼 무엇을 선택하든 차이가 나지 않는 일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을 고르라면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말에도 의미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혼자 편히 살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평생 둘이 함께 살아야 한다면 2번보다는 1번이 나아서 하는 마음으로 결정하면 안 될 일이었다. 한 사람을 만나고 이 사람과 평생 손을 잡고 산책하며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나의 결혼 결정은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것마저도 20대의 짧은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니 끌리는 대로 행동했다고 말해도 되겠다.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사람들은 누군가를 찾아가 묻는다.
친구를, 가족을, 멘토를, 역술인을 찾아간다.
주변 사람에게 묻는 것은 다른 사람의 선택이 궁금해서일 수도 있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선택이 궁금하기도 하고 내 마음이 기울어진 곳에 대한 확신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역술인에게 묻는 마음은 선택을 고민하기보다 누군가 결정해 주길 바라는 마음일 수 있다. 나보다 모든 상황을 빨리 파악하는 사람에게 선택을 맡기면서 선택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선택의 결과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 말이다.
또는 앞으로 다가올 선택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에 더 먼 미래까지 끌어와 마음속으로 결정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선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한 곳에 절대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선택에는 내 앞에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전제하고 있고 그중 하나를 가져다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유일한 것을 만나면 바로 뛰어들어가 그곳에서 나만의 세계를 만든다.
새벽독서를 하겠다고 결정하던 순간도 이것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며 1분도 안되어 결제를 했다.
지난 금요일, 부모님을 뵈러 갈 때도 새벽에 책을 읽다 갑자기 오늘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구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래서 남편은 내게 즉흥적이라고 말한다.
맞다. 나는 계획이 없다.
이걸 하고 저걸 하고, 이걸 선택하고 저걸 선택하고 미리 정한 게 하나도 없다.
그냥 그 시점에서 내 마음을 이끄는 세계로 들어가 그곳에서 산책하다 뛰어다니다 유영한다.
대신 내 마음을 이끄는 뭔가가 생기기 전에는 내가 벌인 일속에서 산다.
그 일을 해나가다 보면 나를 이끄는 유일한 무언가가 내면에서 떠오른다.
비눗방울 막대를 후 불었을 때처럼
작은 비눗방울이 여러 개가 나와
뭘 터뜨릴지 망설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비눗방울 하나가 부풀어지고 그 세계로 주저 없이 들어간다.
이 세상의 어떤 사소한 것도 함부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숱한 작은 것들이 합쳐진 것이다. 사람들은 상상 속에서만 그런 것들을 간파하고 서두르다 보니 그것이 빠져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의 모든 것은 속도가 느리고 말할 수 없이 상세하다.
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사소한 것도 상상하지 않는다.
그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하고, 일을 한다.
그러다 내면에 떠오르는 큰 비눗방울을 만난다.
주) 말테의 수기, 릴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