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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Nov 14. 2023

게으른 사람도 걷게 만드는 ma city 호수공원

아주 작은 습관의 힘

햇빛이 따스한 어느 봄날 오후 뉴욕 센트럴 파크 잔디 위에 누워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호수공원이 좋은데.'     

천사 조형물 아래로 물을 뿌리고 있는 베데스다 분수와 그 분수를 조망할 수 있는 중세풍의 석조 테라스로 유명한 센트럴 파트도 호수공원의 고즈넉함과 다채로움을 따라가진 못했지요. 맨해튼은 10킬로미터 이내에 10개의 공원이 있어 어디에서든 15분 이내에 공원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격자무늬의 애비뉴와 스트리트를 걷다 보면 어디서든 공원이나 스퀘어를 만날 수 있으니 진정 걷는 사람들을 위한 도시지요.

               

 제가 사는 도시도 게으른 저를 일어나 걷게 만듭니다. 아파트에서 나가면 바로 앞에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공원이 있으니까요. 오거리 공원, 문화 공원, 강선공원, 주엽공원, 작은 공원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센트럴 파크, 브라이언트 파크, 타임스퀘어, 하이라인 피크 등 뉴욕의 크고 작은 공원이 시민과 관광객을 걷게 만들듯 동네 앞 공원은 별생각 없이 마트에 가려고 나온 나를 걷고 싶게 만듭니다. 크고 작은 강물이 굽이쳐 흐르다 바다를 만나는 것처럼 우리 동네의 공원길은 모두 호수공원과 만납니다. 호수공원은 작은 공원들을 아우르는 큰 바다지요.      

         

 작가들의 연예인 김훈 작가도 산문집 '연필로 쓰기'에서 정발산과 호수공원의 나무에 많이 의지했다고 써놓았더군요. 20년 동안 이 도시에 살면서 시간 따라 계절 따라 변하는 호수공원의 나무와 늪지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표현해 놓아 반가웠습니다.     



20년 전의 어린 나무가 이제는 크게 자라서 잎이 무성하고 그늘을 거느려서 사람과 새를 모은다. 나는 내가 점찍어놓은 나무들이 자라는 과정을 20년 동안 들여다보았다. 나무의 우듬지 쪽 윗가지들은 새롭게 뻗어 나와서 바람에 출렁거리지만, 밑동에 가까운 굵은 가지들은 더 굵어지고 껍질이 더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가지가 벌어진 각도나 방향은 어렸을 때의 표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김훈 산문 <연필로 쓰기> 1화_호수공원의 산신령-    



 2년 전 겨울 저는 호수공원을 매일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호수공원을 걷는 좋은 습관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책에서도 공신 강성태도 좋은 습관을 만들려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내게 필요한 습관을 바로 붙이라고 하더군요.    

 

 매일 아침 8시 아들을 독서실에 내려주고 곧바로 호수공원으로 갔습니다. 아들이 다니던 독서실은 관리형 학원이라 8시가 넘으면 벌점을 부과하는 곳이었습니다. 이 강제성이 나의 습관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되더군요. 날씨에 상관없이 매일 아침 8시가 조금 넘으면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겨울 아침 공원은 짊어지고 있던 마음속 짐도 슬며시 내려놓게 만드는 마력이 있더군요. 새소리에 귀를 열고 풀잎에 맺힌 이슬에 마음을 빼앗기는 마음의 평온과 안온을 마주하는 날이 쌓였습니다.

 걷기를 습관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힐링이 되어버렸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도 어김없이 걸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은 공원 속 소리도 침잠합니다. 새들도 목소리를 낮추고 주변 소음도 무음 버튼을 누른 것처럼 아래로 가만히 가라앉습니다. 꽁꽁 언 호수 위로 나무 위로 길 위로 하얗게 쌓이는 눈은 참 따뜻하게 눈부십니다. 초록빛과 갈색빛만 조금 남기고 하얗게 변한 세상이 찬연해서 걷고 또 걸었습니다. 매일 걷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다 걷고 나면 같이 산책을 마친 산책 친구 명과 따뜻한 차를 마시러 갔습니다.

내게 필요한 행동을 했으니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여 적절한 보상을 주면 좋다고 하더군요. 그 보상이 저에게는 친구들과 차를 마시는 시간이었지요.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공원을 걸으며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 집을 짓고 살았듯 호수공원 지 옆에 집을 짓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걷는 사람이 되면서 자연 속에서 얻는 기쁨의 에 놀라게 되었지요.


 다시 겨울이 다가옵니다. 이번 방학에는 딸아이를 8시까지 독서실 앞에 내려줘야 하네요. 또다시 겨울 아침의 공원을 매일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센트럴파크보다 멋진 호수공원이 있으니 게으른 사람도 자꾸 걷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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