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의 사유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잘 쓰기 위해서였다.
내 삶을, 내 하루를, 작은 순간을 사는
무해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내 이야기를 출간한 후,
글쓰기의 방향을 고민한 적이 있다.
이제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인문학 에세이, 동화, 소설, 어린이 교재...
이미 글을 쓰고 있는데도 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됐다.
내가 삶을 살기 전에
글을 쓰려고 했다는 걸.
삶의 기초를 쌓기 전에
글의 방향을 잡으려고 했다는 걸.
글을 잘 쓰려고 하기보다
삶을 잘 살아야 했다.
글의 방향을 찾기보다
삶의 방향을 찾아야 했다.
삶을 잘 산다는 건
인생의 장면마다
감정은 단순해지고,
사유는 깊어지되,
행위는 이어지는 것이었다.
삶의 순간을 감정으로 번역하지 않고
통찰로 해석하여 삶의 기둥을 세우고,
단단한 벽돌을 쌓아가는 것이었다.
감정에 의해 번역된 장면은
소모적인 통증으로
순간을 낭비하게 하지만,
통찰에 의해 해석된 장면은
순간을 행위로 저금한다.
통찰을 만난 삶의 장면은
기억의 왜곡 없이, 감정의 개입 없이
관찰되고, 해석되어
삶을 관통하는 심지를 세운다.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며
삶의 항해에 잦은 바람과 파도를 맞았다.
감정의 파도는 마음을 닳아 없애듯 소모시켰고,
연속된 책무의 바람으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래도 위기로 느끼거나
포기로 빠지지 않고 견디고 나아갔다.
그 시기를 뚫고 나와 알게 된 것은
결국 '바람과 파도는 꾸준한 항해사의 편'*이라는 것.
바람과 파도가 긴요한 협력자가 될 때는
항해사의 재능이나 기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저 매 순간 묵묵히 항해하고,
바람과 파도가 방해꾼이 되어도 포기하지 않아서다.
폭풍에 잠시 돛을 접는 것을 포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파도에 흔들림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과 파도가 언제나 항해사 편일 수만은 없다.
거센 바람과 파도를 견딘 사람만이,
배를 밀어주는 순풍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공기처럼 스며들어 위대한 행동을 감싼다.*
자연은 팔을 뻗쳐 인간을 껴안으려 한다.*
폭풍을 지나 순풍을 만났을 때 비로소 뛰어난 항해사로 거듭나고,
바람과 파도는 내 편이 된다.
마치 자연이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보태는 것처럼.
자연은 보이지 않는 행운의 팔을 뻗어 우리를 껴안으려 한다.
이유와 변명을 대며 행운의 팔을 뿌리치는 건 나 자신이다.
꾸준히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에게
행운의 팔은 힘을 보탠다.
언젠가 행운의 팔이 나에게 닿을 때까지
내가 할 일은 항해를 계속하는 것이다.
행운의 팔이 더 크게 나를 안아줄 수 있도록
순간을 행위로 살며 하루를 키워나가는 것이다.
*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의 명언을 변형
* <에머슨 수상록>,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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