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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Dec 08. 2023

난생처음 셀프 김장

게으른 사람의 무모한 도전

 드디어 혼자 김장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김장을 마치고 끊어질 것 같은 허리 통증을 느끼며 소파에 누워 생각해 봤다. 나는 어쩌다 무모하게 김장에 도전했을까?

 제대로 된 김장을 해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힘든지 몰랐  친정이든 시댁이든 이제 김치가 나올 구멍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배워볼까 하는 마음에서였는지 모르겠다. 시어머니는 작년에 팔을 다쳐 수술을 하셨고 친정어머니는 올해 암수술을 하셨으니 김장은 커녕 두 분 다 건강하시기만 해도 감사한 상황이다.


 시댁과 친정이 모두 경상도여서 김장을 도우러 내려가는 게 쉽지 않았다. 애 둘을 키우며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남편은 외국 출장이 잦아 따로 휴가를 내지 않으면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제법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20년 동안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김치를 먹었다. 택배로 김치를 받으면 김장비라고 달랑 몇십만 원을 보내드리며 그래도 도리는 했다고 자위하던 행동이 오만이었다는 걸 셀프 김장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딸은 학교에 갔고 남편은 출장을 갔다.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절인 배추를 씻어 물을 빼두었다.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 애먼 김장 유튜브만 계속 돌려본다. 유튜브마다 레시피가 다 달라서 어떤 걸로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래도 내 눈을 끄는 재료가 있다. 홍시다. 김치에 설탕이나 조미료대신 홍시를 넣으면 달고 깊은 맛을 낼 것 같았다. 육수를 만들고 양념에 필요한 재료를 모두 갈아서 준비해 두었다. 양념에 들어갈 파와 갓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았다. 양념이 숙성돼야 맛있다고 해서 배추의 물을 빼는 2시간 동안 양념도 같이 숙성시켰다. 내년 되면 또 까맣게 잊을게 분명하니 김장 레시피도 정리해 두었다.


절인 배추 20kg 기준

-양념-

고춧가루 1kg

새우젓 400g

생새우 200g

마늘 400g

생강 80g

멸치 액젓 600g

무 반 개

사과 1개, 배 2개, 홍시 3

불린 청각

육수(알육수 5개 , 황태머리) 물 1리터

찹쌀가루 4스푼

(종이컵 1컵이 약 200g정도 돼요.)


-김칫소-

쪽파 1단

대파 흰 부분 3개

갓 1단

무 반 개 채썰기

알육수 5개와 황태머리 5개.다음에는 황태머리 3개만 넣기
홍시가 빠졌네요
무우채 중 반은 갈아서 양념에 넣었어요.

양념을 만드는 것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제 식탁에 김장용 비닐을 깔고 배추와 양념과 김칫소를 올려놓았다. 다이소에서 산 대형튜브를 닮은 김장비닐과 투명비닐, 대야가 있으니 제법 그럴듯하다. 누가 보면 요리를 아주 잘하는 사람인 착각할 정도의 바이브까지 풍긴다. 괜히 뿌듯해진다.

양념과 야채를 섞었다. 쪽파와 갓이 너무 많지 않을까 했는데 양념에 섞어 놓으니 금방 숨이 죽어 빨간 양념과 적당한 조화를 이룬다. 반으로 자른 배추 16개가 많아 보이기도 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양념 넣기를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배추 줄기 쪽에 양념을 많이 넣었다.


 배추 8개에 양념 넣기를 끝내니 허리 통증이 밀려왔다. 식탁에서 앉아서 하면 불편하고 서서하면 낮아서 허리가 아팠다. 더 큰 문제는 양념이 부족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불안한 느낌은 왜 틀리지 않는지. 양념을 조절해 가며 넣어서 마지막 배추까지 무사히 끝내 다행이었다.


 배추를 김치통에 담고 꾹꾹 눌렀다. 그래야 공기가 안 들어가서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단다. 그 위에 비닐도 덮었다. 김치 한 포기를 꺼내 노란 배춧잎을 뜯어 입에 넣어 보았다. 삼삼하고 맛있는 김치가 입 안에서 아삭거렸다.

 브런치에 어떤 작가님은 엄마 김치가 아니면 못 먹는다고 했다. 가족의 입맛에 맞춰서 만든 김치를 만들어 먹고 그 맛에 몇십 년 동안 길들여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김칫소도 어떤 집은 밤을 넣고 어떤 집은 굴을 넣기도 한다. 어쩌면 김치로 자기 집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김치로 단단히 하나가 된다. 부모님과 만든 김치를 가져와서 꺼내 먹을 때마다 강한 유대감이 생길 것 같다. 


 몇 년 전 무한도전에서 외국에 사는 교포분들에게 부모님이 만든 음식을 배달해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음식을 먹는 당사자에게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만들어 주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대접했다. 그런데 음식을 먹던 분이 몇 숟가락 먹고나더니 어머니가 해준 음식과 너무 똑같다고 했다. 엄마 김치맛을 단 번에 알아봤고 나중에는 눈물까지 보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음식을 미각으로 느낀 것이다. 몸의 세포가 그 맛을 기억한 것이다.


 다음 날 어느 정도 숙성된 김치를 꺼내 먹어보니  맛있었다. 무모하게 도전하긴 했지만 절반은 성공한 것 같다. 나도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보내줄 김치는 만들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대견해진다. 그래, 게으름을 이기고 미리 연습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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