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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Dec 15. 2023

열정을 가진 사람은 빛이 난다.

영어북클럽과 글쓰기 모임

40대가 된 후에 친구가 가진 걸 부러워한 적이 있다. 샤넬 같은 명품백도 아닌, 비싼 아파트도 아닌 지적 교유를 나누는 독서모임을 수년간 가진 친구였다. 언젠가 그 친구가 카톡방에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독서모임을 하는 중간에 노트와 책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는 테이블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생경했던 프루스트의 책과 자신의 생각을 빼곡히 정리해 놓은 노트를 소유한 그들이 타고난 지성인처럼 느껴졌다.


 나도 이전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독서모임을 했다. 이기적 유전자, 열하일기와 같이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선정하여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눴다. 학교 일이 바쁠 때는 책을 다 읽지 못할 때도 있고 내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참여하기도 했지만 한 주제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도 하면서 미욱한 나의 내면이 지혜로워지는 것 같아 좋았다. 시간이 흘러 독서 모임을 하던 멤버들은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졌고 그 이후로는 선생님들과 독서모임을 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휴직을 하면서 동네 독립서점에서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출근으로 채우던 시간에 공백이 생겨서인지 한 달에 한 번인 독서 모임에 갈증이 났다. 빈한한 지성을 영어공부로 채우던 중 그 작은 불꽃에 기름을 붓는 일이 생겼다.


 영어회화학원에서 만난 상당한 영어실력의 소유자 N의 소개로 영어북클럽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 북클럽은 6년 전에 N이 만들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치열하게 책의 내용을 분석하며 토론한다고 했다. 내가 찾던 행운을 바로 오늘에서야 만났구나 마음이 설렜다.


"저도 북클럽에 참여해보고 싶어요."

N과 나는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그녀는 카톡으로 안내사항을 보내주었다. 차로 40분인 모임 장소가 좀 멀게 느껴지긴했지만 영어 북클럽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물리적인 거리감은 견딜만했다.


 일주일 동안 정해진 양을 꾸준히 읽을 수 있을지 걱정도 됐지만 게으름을 이기기 위해서는 환경을 바꿔야 하지 않는가. 영어책 읽기를 같이 할 사람과 과제가 있는 북클럽에 들어가는 건 영어책을 꾸준히 읽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을. 게다가 책을 읽고 자신이 맡은 챕터에서 의견 나눔을 위한 질문을 만들어야 하니 깊이 읽고 사고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내 사고가 확장되고 지혜가 쌓이는 상상을 하니 시작도 하기 전에 뿌듯해진다.


 교사가 되고 부모가 되면서 나와 함께하는 아이들이 삶을 살아가며 답을 찾아야 할 때 머리로 이해되고 가슴으로 와닿는 조언 하나는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소설을 읽고 여러 사람의 인생을 간접 경험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애썼. 청소년 소설을 읽으며 그들의 고민과 고뇌를 그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했다.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하루하루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모습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나 과학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사회현상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사회에 나갈 아이들에게 지혜와 인사이트를 나눠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독서모임은 지혜를 싣고 나를 꾸준히 달리게 해주는 마차가 되어주는 것이다.


 영어북클럽을 시작한지 3주가 지났다. 책 제목은 Rolf Dobelli의' The art of thingking clearly'로 한글 번역본 제목은 '스마트한 생각의 습관들'이다. 상호관계유지의 오류, 확증 편향, 권위자 편향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 이론의 적절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몇 개의 성인영어회화학원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속이 꽉 찬 수업은 처음이다. 매주 10 챕터를 읽어야 하니 인풋이 상당했고 우리가 만든 질문으로 의견을 나누다보니 아웃풋 또한 굵직했다. 책이라는 매개체로 사람과 교유하는 느낌은 지적이면서도 솔직하다. 더군다나 다른 언어로 말하다 보면 또 다른 자아가 생긴 것처럼 새롭다.


 첫 수업 소감으로 "이런 수업은 돈을 주고 들어도 아깝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녀들의 영어 실력과 지성에 놀랐고 이런 그룹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다. 알고 보니 회원 중 한 명은 영어책 번역가이고 두 명은 외국계 회사에서 수년간 일했던 이들이다. 나머지 회원도 혜안이 남다르다. 그녀들이 구사하는 고급 표현과 세련된 사고에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까지 고급지게 물들었다.


 열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숨겨진 보석을 만난 것처럼 귀하고 반갑다. 금전적인 이익을 바라지 않고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배우는 거라면 더 그렇다.  그들눈빛은 윤슬처럼 반짝인다. 그 에너지가 같이 있는 동안 공간을 꽉 메워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삶의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일주일에 두 번 글을 써서 공유하는 브런치내 글쓰기모임 라라크루에 가입했다. 라라크루에는 70대에 청소일을 하시며 책을 출판하신 작가님이 있다. 70대의 나이에도 일을 계속하시면서 매일 글을 쓰시는 작가님의 열정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도 즐겁게 해낸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특이한 사람, 굳이 힘들게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게 그들의 매력이다. 열정을 가진 모습이 평범을 뛰어넘어 비범해 보이기까지 하는 매력적인 사람.


  그저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생각과 글을 나눴다는 사실만으로 나의 게으름은 두 단계 극복된 느낌이다.


 지금 내 앞에는 한창 시험기간인 딸이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그 등을 바라보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딸아이는 그녀의 숙제를 나는 나의 숙제를 한다. 같지만 다른 색깔의 열정을 담아 나아간다. 오늘 밤도 모녀는 책과 함께 깊어진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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