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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느 Jan 01. 2023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용기(2)

네 번째 | 연말 스픽에서 살아남기

"지안님 바쁘세요? 잠깐 줌 가능하세요?" 


인표에게 DM이 왔다. 인표는 평소에도 생각이 많아지거나 고민이 되는 지점이 있으면 DM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 크게 놀라진 않았다. 이번에는 어떤 고민이려나하는 마음에 답장을 했는데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지난 번에 지안님이 말씀하신 1월 모델링이요. 그거 저도 잘 모르겠어서, 콜튼한테 사실대로 말했어요. 지안님이 어려워하고 있다고요. 그랬더니 콜튼이 그거 별거 아니라고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아마 콜튼한테 연락이 올거예요"


콜튼은 스픽의 창업 멤버였다가 잠시 다른 회사를 다니다가, 10월에 다시 스픽으로 돌아온 COO였다. 당시 마케팅 팀에서는 콜튼의 슬랙 답장 속도와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나 콜튼에 대한 칭찬이 줄을 잇고 있었다. (샌프란 팀원들도 서울 팀원들에 대해 이렇게까지 신경쓸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는 종종 '샌프란 팀원 중에 누가 제일 좋은지' 인기 투표를 하곤 했다)


콜튼과 일해보고 싶기도 했기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내가 내 입으로 '나 일 못해요'라고 말을 하게된 꼴이 아닌가 당황스럽기도 했다. 동시에 콜튼과 이야기하게 됨으로써 괜히 설득해야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드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인표가 말했다. 

"지안님 지금은 팀원의 도움을 받아야할 때인 것 같아요. 팀이라면 서로 '모르면 모른다'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콜튼이나 코너가 지안님한테 이걸 왜 몰라! 라고 뭐라고 하진 않을 거잖아요."


그렇다. 샌프란 팀도 서울 팀도 우리는 한 배를 탄 팀이었다. 

이 배가 좌초되지 않으려면, 그것이 검은 머리 한국인이든 파란 눈의 외국인이든 문제를 같이 해결해야 하고,내가 어려움에 처해있다면 누구든지 달려와서 도와줘야 했다. 


인표와의 줌콜 이후 나는 콜튼에게 장문의 슬랙을 남겼다.

"콜튼, 너가 도와준다고 들었다. 정말 기쁘다. 솔직히 말해서 난 모델링에 대해 전혀 모르겠다. 모델링만 모르는 것이 아니다. 샌프란 팀과 우리가 전략을 세우는 접근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전략 그거 어떻게 세우는 건지도 좀 알려주라"


콜튼은 곧 캘린더를 보내왔고, 심지어 자신이 모델링의 예시와 모든 준비를 할 테니 회의를 위해 어떤 준비도 필요 없다고 했다. 정말로 아무 준비 없이 들어간 첫 회의는 콜튼이 나에게 전략을 세우기 위한 질문들을 던지고, 그것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고 나서는 콜튼이 내 대답에서 더 궁금한 부분들에 대해 Open questions 를 남기고, 내가 따로 시간을 내어 그것에 대한 답을 채웠더니 어느새 빠져있던 전략의 블럭들이 채워져있었다. 그 다음 회의부터는 말 그대로 속전 속결이었다. 콜튼의 모델링 예시대로 몇 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숫자를 채우고, 부족한 부분들을 짚어가면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top-down과 bottom-up 모두 하나의 목표 값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심지어 콜튼은 우리가 함께 논의한 이 목표와 전략에 대해 코너와 싱크를 직접 맞추겠노라고 말해주었다. 목표와 전략이 정리가 될 수록 안심이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 이걸 영어로 어떻게 다 설명하지'라고 걱정하던 차였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콜튼의 말과 태도가 고마워서 절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었다.


마지막 회의가 끝나고 콜튼에게 'we are all aligned to start there' 라는 슬랙 메세지를 받았을 때 그동안의 막막함과 이 결과를 도출하기까지의 콜튼과 나눴던 대화가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콜튼에게 마지막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정말 고맙다고, 이제 막 시작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고"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목표 설정과 전략을 수립하는 방법을 배웠을까? 아니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을 놔두지 않고 '나 몰라요..어려워요'라고 말한 찌질한 용기를 내었을 때 세상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누군가에게 받는 도움' 그 이상이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팀과 그걸 또 채워주고자 노력하는 팀원들에 대한 감사함,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성장감과 성취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넉넉한 마음 등 모든 것이 내가 울며 겨자먹기로 낸 용기 한 스푼이 내 인생에 가져온 것들이었다.


여전히 오늘도 모르는 문제 앞에서 당황하고 고민한다. 물어볼까? 그냥 지나칠까? 하지만 다시 한 웅큼의 용기를 내어 송구한 마음을 가득 담아 메시지를 보낸다. 가지런히 합장한 손 이모티콘과 함께. 물어보는 고통은 잠깐이지만, 그로 인해 얻게되는 러닝과 성장은 무한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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