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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느 May 13. 2023

퇴사를 생각하다.

회사를 마지막으로 나서는 날, 어떤 걸 담아 나오게 될까요?


연말이 다가오면서 샌프란도 한국 팀도 1월 성과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더 높아져 갔다.

매번 회의에서 이야기가 같은 곳을 맴돌고, 업무에 대한 질문은 하이레벨을 벗어나 점점 디테일한 것들로 번져갔다. 실무자로서 '당연한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자니 힘이 쭉쭉 빠졌다.


일에 있어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신뢰'가 핵심 버튼인 나에게, 이렇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불안해하고, 확인 받아야하는 것은 동기부여에 치명적이었다. 어느 날은 이 신뢰받지 못하는 느낌에 압도되어 엉엉 울다가 퇴사한 가영과의 원오원이 끝나버리기도 했다.


그 순간, 나에게 간절한 것은 나를 믿어주고 이런 불편한 감정들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회사를 떠나는 것이었다. 이 마음이 너무나도 확실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년에는 커리어 전환을 꼭 하겠노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문득, 내가 지금 스픽을 그만둔다면 나는 무엇을 가지고 떠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톡 옵션은 당연하거니와 그 어떤 것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과 함께 억울한 마음이 솟구쳐 올라왔다.


6년이라는 시간을 한 회사에서 보내고 보니 남는 건 퇴직금도, 스톡 옵션도 아닌 사람이었다. 작은 성취를 함께하고, 회사의 성장을 기뻐하고 회사가 잘못 된 방향으로 갈 때는 마치 내 회사라도 되는양 안타까워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 남았다. 일을 나눈 줄만 알았는데 그 과정 속에는 사람과의 진한 우정이, 오랜 시간이 만들어 주는 단단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난 회사의 문을 나설 때 나의 퇴사 박스에 '사람'들이 가득 담겨있었다면, 내가 스픽을 떠날 때 나는 어떤 것들을 주섬주섬 담아 나오게 될까?


1.나의 대답은 여전히 '사람'이다.


'회사를 친구 만들러 다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같다. 하지만 나에게 적어도 직장은 생계 유지 그 이상의 의미가 있고, 내 하루를 적게는 9시간 많게는 12시간을 갈아 넣는 이 곳에서 함께 부대끼는 이 사람들 역시 '직장 동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왕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많은 감정을 나눌 거라면, 나의 요란하고도 치열했던 성장을 지켜봐 주는 동료가 내 인생에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내가 새로운 시작을 할 때 나의 찬란한 이 시절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내 시작을 응원해줬으면 좋겠고, 못난 내 모습에 시무룩해져 있을 때에는 동료가 멋진 나의 기억을 소환해서 등 두드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직장 동료에게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 무리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나는 그런 마음들을 너무 많이 주고 받아 버렸다.


2.그 다음으로는 좋든 싫든 '영어'가 담겨있을 것이다 .

영어는 도전의 대상이었다가, 공포였다가 성취감이었다가 언어 그 자체가 되었다. 잘 하고 싶은 마음과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갭에 끼어 10여개월을 고통 속에 보내다가 최근에서야 이러나 저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그 자체가 중요하고,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나의 언어 버튼을 오작동 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영을 배울 때 새벽마다 성실하게 수영 교실에 나가고, 초급반 중급반 이렇게 단계를 밟아갈 수 도 있지만 누군가는 물에 빠져서 살기 위해서 헤엄치다 수영을 터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안전한 수영 교실이 허락되지 않은 건 유감이지만, 나는 어쨌거나 살아 남았고, 1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어가 늘었다.(표현의 범위는 미미하지만, 영어를 대하는 마인드 자체가 성장했다.)


3.마지막으로는 지금 나에게 간절히 필요한 '긍지'를 담아 나가리라.

긍지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당당함'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나를 괴롭힌 것은 바로 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는 것이었다.


확신이라는 감정에는 '이 정도면 됐다'라는 마음이 있다. 내 마음 속에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내가 맞나?'라는 질문은 '이 정도로 충분한가?'로 치환해도 여전히 그 질문의 무게감과 압박감은 동일하다. 1년 동안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발버둥을 쳤던 것은 어쩌면 '내 능력을 믿는 당당함'이라는 감각을 얻기위한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또 이렇게 살아 남아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잘 해야하는 일이 있다면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그 고통을 울며 꿀꺽꿀꺽 삼킬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어느 날 아침 나는 '이 정도면 됐어 나는 내 능력을 믿어!'라는 마음이 들 때 나의 퇴사 박스의 마지막 아이템인 '긍지'를 채워넣고 스픽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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