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느 Sep 27. 2023

'영어 미팅 공포증' 극복하기

글로벌 외국계 스타트업 다니면 다 영어 잘하나요?



연말이 바쁘다 보니 추석 때쯤이 되면 한 해가 다 갔네라는 생각에 주섬주섬 내가 보낸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많은 걸 말할 순 없지만, '작년에는 모든 걸 통제하고 호통치는 나'라는 엄격한 코치와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꽤 느긋하고 담백해진 나와 장거리 호흡을 맞추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그 마음의 여유와 상태를 알 수 있는게 ‘영어 미팅’인데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의 가장 극적인 변화를 설명해주는 게 영어 미팅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라 그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영어 미팅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할 수 있는 말 그 간극을 마주하는 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나를 던지는 일. 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걸 통제하고 한 눈에 보길 좋아하는 나에게 '영어 회의'는 언제나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스픽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도 영어 미팅이였고, 그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회의에서 영어를 쓸 때마다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심지어 바보같아 보이기까지 하는 내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영어 미팅 전날 밤에는 회의에서 해야할 말, 그리고 할지도 모르는 말, 나올지도 모르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모두 영어 스크립트로 써서 그걸 중얼중얼 말해 보기도 하고, 때론 달달 외워가기도 했다. 하지만 회의는 리포팅이 아니라 대화 아닌가.


그런 방법들은 회의 초반 10분 정도, 내가 공유해야하는 주제를 voice-over할 때에만 통했고 그 이후부터 날아 들어오는 질문에 대처하는 일은 전혀 다른 순발력과 언어 능력을 요했다. 모든 걸 완벽하게 답해내고 싶었던 나는 어느 순간 부터인가 머릿 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았고, '살펴보고 내가 다시 알려줄게'라는 말로 상황을 피하는 기술만 늘어갔다.


그런데 내가 스픽에서 보내는 시간과 정보와 맥락들이 많아지면서, 회의 시간에 입을 꾹 닫고 있는게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올해 스픽이 글로벌 확장을 하면서 점점 나와 이야기하는 외국 팀원이 많아지고, 우리를 담당하는 매체 매니저들도 한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으로 번져갔다.


회의 때마다 영어를 잘하는 연승님(지사장님)께 회의 동석을 부탁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 혼자 한국인인 회의나 인터뷰를 들어갈 자신도 없었다. 회의 시간이 다가오면 말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OOO(연차)라고 할까?' '줌이 접속이 안된다고 할까?' 말도 안되지만 정말 창의적인 변명들이 마구 생각났다.


하지만 일을 잘하는 것의 근본은 '있어야할 자리에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있어야할 자리는 줌 한 구석의 많은 카메라 화면 중 하나였고, 나는 그 곳에 있어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다. 바둑판 같은 줌 화면 속 넷플릭스나 외국 유튜브 채널에서나 봤을 법한 파란 눈의 사람들 사이에 혼자 새카만 머리를 하고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나를 보면 가여울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이 영어 감옥 속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외롭게 만들었다.


영어는 쓰면 쓸수록 는다는데 만나는 외국인이 많아질 수록, 내가 전달해야할 내용이 어려워질 수록 내가 영어를 했는데 못 알아 먹어서 적막이 생기면 어떡하지? 쟤네 말을 내가 못 알아 들어서 나 혼자 동문서답 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별별 걱정에 내 나약하고 여린 영어 세포는 점점 주눅만 들 뿐이었다. 그런데 어색하게 '땡큐 바이'를 외치고 줌을 서둘러서 나오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진짜 내가 영어 미팅을 망친 적이 있던가?'

'한 번이라도 누군가 나에게 너 영어 못 알아 먹겠다고 고함친 적이 있던가?"


당연히 없다. 물론 답답한 적은 셀 수 없이 많고 동문서답을 한 적도 많지만 그들은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내가 알아 듣도록 천천히 말해주거나, 그러니까 너가 하려던 말이 이거 맞아?라고 그들의 유창한 영어로 다시 확인해주곤 했다. 덕분에 그 어떤 회의도 '영어가 안돼서 더이상 진행이 되지 못함'이라고 기록되지 않고, 영어를 잘하는 다른 팀원의 도움으로 더듬더듬 완성되곤 했다.


내가 소통하는 사람들이 스픽의 외국 팀원일 때는 스픽 팀원들이 착해서라고 생각했지만, 그 범위가 넓어지다 보니 결국 그 모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일을 잘 해보고자 하는 선한 의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선한 의지들은 벽돌처럼 차곡차곡 모여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내 발 밑에 때로는 디딤돌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연필이 되어 나 대신 회의록에 작성되어야 하는 활자를 마구 채워주기도 했다.


이 날 이후로 영어 회의를 들어갈 때마다 책 'It works'에서 발견한 이 문구를 세번 씩 읽고 들어간다.


그들은 내 강점의 조력자요.약점의 협력자이며
 기회 포착의 조언자요 위기 예방에 꼭 필요한 비판자다.
나는 그들의 선한 의지를 믿어 그들을 성공의 동반자로 삼는다.


돌아보면 내가 영어가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영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 일을 잘 되게 만들겠다는 '선한 의지'보다 완벽해 보이고 싶은 욕심, 못하는 것을 보여주기 싫은 마음이 내게 더 컸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여전히 영어 미팅 전에는 마치 미루고 미루다 기말 고사가 내일인 대학생처럼 부담스러운 마음을 안고 잠에 든다. 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언어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 아닌 것을 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는 이 일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는 1등인 사람이고, 그 마음이라면 더듬더듬 불완전한 영어라도 나와 우리 팀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거라는 걸 잘 안다.


나를 한 없이 작게 만드는 영어를 누군가가 채워주고, 또 성장시켜준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부족한 점을 매꿔주고 성장시켜줄 수 있는 조력자가 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외국인 사이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리틀 샤이 아시안인 '나' 자신의 등을 토닥여줄 수 있는 멋진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이전 13화 나의 영어 성장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