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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합창 09화

인생의 봄은 한 번뿐이다

인생의 봄

by Paul

요즘 날씨가 너무 좋다.

얼마 전까지 파릇파릇 고개를 들던 연둣빛 나뭇잎도 제법 푸른 옷을 갖춰 입고 울창한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의 여왕 5월이 무르익었고 말 그대로 생동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봄이다.

비발디의 사계가 이 계절을 노래하고 조지 윈스톤의 사계, 봄에서도 계절의 생기가 건반 위를 달린다.

일만 하기엔 아까운 날이고 주말이 되면 나가고 싶은 날들의 연속이다.

그래서일까 봄은 시작과 생동의 계절이란 표현은 너무 적절한 이맘때의 정서가 아닐 수 없다.

겨울을 이겨낸 장미가 아름답듯 봄은 추운 겨울이 있기에 더욱 반가운 것이고 움츠렸던 마음도 기지개를 켜는 절기의 시작이다.

입학 시즌이 봄이고 신입사원이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시기가 봄이며 새로운 가정의 시작인 결혼 역시 봄에 많이들 한다.

인생의 봄은 젊음이기에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젊은 날이다.

화장을 하지 않은 민낯이 가장 고울 때이고 헐렁하거나 타이트하거나 모든 패션이 가장 어울리는 시기가 젊을 때이며 완숙하지 않은 정서 또한 자유로운 까닭에 젊음 자체만으로 매력이 있는 시기가 인생의 봄인 청춘이다.

젊은 날이 좋은 이유는 모든 게 가능하고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만하기 때문이며 점화된 구동은 거칠 것이 없다.

꿈도 사랑도 현실이 되지만 때로는 가슴 아픈 상처도 겪어야 하는 시절이 젊음이며 쉽게 뜨거워지고 금세 식어버리는 변화도 많은 것이 젊은 감성이므로 수많은 시행착오가 당연한 젊음의 성장과정이 아닐 수 없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힘겨운 고행만이 경험을 쌓는 것은 아니며 경험이라 하더라도 모두 가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경험이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는 경우는 유용 가치가 있는 체험이 도구로 사용될 때나 가능한 것이므로 경험이 많다는 것은 방황의 자취가 많다는 의미와 동일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젊은 날 구동의 방향은 인생의 좌표가 달라지는 가장 소중한 시점이며 감성이 충만한 시기가 청춘이지만 감성에 따르는 행보는 목적 없는 방황과 같은 것이다.

한없이 좋기만 한 젊음은 짧아서 소중하고 자연의 순환은 변함이 없지만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게 인생의 봄이다.

어찌 보면 자연의 섭리는 인생과 같아서 삶의 단계는 계절의 순환에 비유할 수 있지만 자연의 법칙과 상이한 인생은 파종하고 가꿔야 하는 성장의 조건이 필연적이므로 스스로 자생하는 생명체와는 구분이 된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은 시간의 여유와 함께 넘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지만 젊은 날의 여유는 너무나 좋은 이유로 체감하지 못한 채 지나버리는 특성이 있다.

자유와 개성이라는 명분으로 다양한 가치가 많은 오늘날은 추구할 수 있는 목적 또한 많은 까닭에 서로 다른 의미가 공존하는 세상이지만 다양한 가치는 선택의 조건일 뿐 사회가 인정하는 가치의 개념이 세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자유와 개성도 사회에서 용인되는 범위 내에서 존재하는 것이며 내일이 없는 가치는 존재할 수 없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봄은 곧 과거로 묻히지만 봄의 생명은 성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미래가 없는 생명체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것이며 젊은 날, 소중한 시간들이 낭비되는 현실은 결실 없는 내일을 예고하는 것이다.

젊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꾸밈이 없는 그대로의 모습에 매력이 있는 것이며 또 다른 의미로는 희망이 내포된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파종하지 않아도 흩날리는 씨앗은 자리를 잡지만 무성한 풀숲으로 번식한 생명체는 한낱 쓸모없는 잡초일 뿐 방황의 결실은 잡초와 같은 것이다.

경제가 힘들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서나 흔히 듣는 익숙한 말이고 사는 게 고역이 아닌 이상 세대를 막론하고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풍요로운 사회는 감사와 만족은 복에 겨워 잊혔지만 따지고 보면 만족이 없는 현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물질만능의 결과이며 모든 가치가 이윤 추구라는 목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현대문명의 발달은 인터넷 세상을 만들었고 그에 따르는 새로운 문화는 바쁘게 유행을 창조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사회는 인간의 정서마저 변화시켰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도 사회의 핵심 인력은 젊은 능력이 대다수이며 자본이 세상을 만든다 해도 진보와 발전의 주역에는 언제나 젊은 능력이 있었다.

경제적 가치가 최고이고 소수의 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이다 보니 '희망이 차단된 세상'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희망이란 세상이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회가 제공하는 조건도 절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법이며 과거 신분계급이 존재하던 시대에 비하면 희망이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일 뿐 노력하지 않아도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포퓰리즘이 만들어낸 유행어가 '희망이 차단된 세상'이고'금수저, 흙수저'라는 이분법적 구분이다.

다시 말해 정권의 실패를 사회의 현상인양 호도하는 권력의 하청 기관인 방송에서 부르짖는 선동적 표현이 '희망이 차단된 세상'이고 '금수저, 흙수저'라는 신조어이므로 오늘을 사는 젊은 세대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부정적 소리를 오늘의 현실로 인식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시대적 갈등이 양극화의 영향으로 더욱 부각되는 상황을 감안하고 편향된 정보보다 큰 그림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에게 미래가 없는 오늘은 있을 수 없으며 희망이 없는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형성한 긍정의 힘이지 한정된 권력 상위의 소수가 아니며 세상은 결코 자본가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가난하고 힘겨웠던 과거에도 사회를 이끌었던 주역은 젊은 세대였고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대한민국을 재건한 대다수의 인력은 젊은 노동의 가치였다.

오늘의 풍요로운 세상은 부모님 세대가 젊은 날에 이룩한 결실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되새긴다면 희망이 차단된 세상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다양한 현대의 가치는 노력하는 사람들이 창조하는 것이며 오늘날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다국적 기업의 창업주들은 인터넷을 이용한 시대의 변화를 선점한 인물들이다.

Big 4로 불리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의 신화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결과이며 신화창조의 주역들은 화려한 배경을 소유하지 않았고 그들의 나이는 젊었으며 성공의 기간 또한 길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능력주의는 결코 화려한 이력을 의미하지 않으며 각계각층에서 필요하는 인재는 능력이지 학벌과 배경이 아니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꿈을 현실로 바꾼 노력의 결과는 희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고 젊은 날의 신념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신화였다.

젊음이 아름다운 까닭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가 충만하기 때문이며 젊음이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위력이 있는 법이다.

한번뿐인 인생의 봄을 희망으로 가꾸는 주역은 다름 아닌 오늘의 젊은 세대이다.

살아있는 동안 따뜻한 봄은 언제나 다가오지만 인생의 봄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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