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동감 Agree 09화

서양에 유대인 동양에 한국인

한국인과 유대인

by Paul

미국에는 570만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다.

유대인의 미국 이민 역사는 1654년 스페인 지역 출신의 유대인 세파르딤(Sephardim)이 처음 이주하여 상업에 종사했고 이후 19세기에 독일계 유대인 아슈케나짐(Ashkenazim)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1933년부터 나치를 피해 엄청난 수의 유대인이 미국으로 건너왔고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유대인은 아슈케나짐(Ashkenazim)이다.

미국이 하드웨어라면 미국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는 유대인이라고 한다.

창의적 발명과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고 미국 정치, 경제에 막강한 위력을 행사하는 핵심으로 성장한 유대인은 유다의 자손이라는 종교적 탄압과 홀로코스트 피의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 독일계 유대인 아슈케나짐(Ashkenazim)과 스페인 지역의 세파르딤(Sephardim), 중동지역의 미즈라힘(Mizrahim)으로 구분되며 종교재판과 박해를 피해 세계 여러 지역으로 이주를 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유대인의 가난한 마을 게토(ghetto) 자리를 잡은 최초의 전당포(Banco Rosso)는 기독교의 탄압과 통제 속에서 대부업을 시작했다. 보잘것없었던 소규모 유대인의 고리대업은 5세기를 지나면서 점차 거대한 금융업으로 성장했고 유대인은 오늘 미국 월스트리트의 주인이 되었다.

골드만삭스, 리만 브라더스, 솔로몬 브라더스, 비어 스턴스와 같은 세계적 금융기업의 창립자는 유대인이다.

200년 전 시작된 미국의 증권시장에서 유대인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고 소자본으로 금융투자 회사를 시작한 리만 브라더스와 골드만 삭스는 후에 제임스 롭, 제이콥 쉬프와 함께 1913년 미국 연방은행 FRB를 창립했다.

다른 나라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골드러시 속에 미국 서부로 이주한 유대인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1879년 세계 최초의 청바지 리바이스를 만들었다. 청바지는 단순한 옷이 아닌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를 창조한 것으로 오늘날 블루진은 젊은 층의 패션을 넘어 세계적 문화 트렌드를 형성한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문화상품이다.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당시 획기적인 새로운 발명품과 창의적인 문화를 계속 창출했고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상업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유대인이 금융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좋은 여건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과 연결이 가능한 인맥이었고 유럽의 유대인 박해정책에도 법적인 제약 없이 금융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고리대업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천박한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대부업으로 성장한 유대인의 금융업은 미국에서 거대한 성공을 이루었고 이후 유대인은 신문과 방송, 언론과 정보산업을 장악했다. 뉴욕 타임스, 워싱톤 포스트, LA 타임스 외에 ABC, NBC, CBS 방송과 유명 라디오 방송, 초대형 언론의 소유주가 유대인이며 미국의 금융과 대표적인 미국의 정보산업을 소유한 유대인은 미국의 대중문화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세계 상업 문화의 산실 할리우드를 만들었다.

워너브라더스, 폭스, 콜롬비아, MGM, 파라마운트를 소유하면서 영화가 탄생한 프랑스를 중심으로 번영했던 유럽의 영화산업을 미국으로 옮겨다 놓은 주역이 되었다. 금융업을 장악하고 정보매체와 문화산업까지 소유한 유대인의 힘은 다시 워싱턴으로 향했고 막대한 재원과 미국과 해외의 인적 자원을 통해 에이팩(AIPAC)을 만들었다. 에이팩(AIPAC)은 미국 이스라엘 공동문제위원회로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미국의 유대인 연맹이며 에이팩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역대 미국 대통령과 다국적 기업의 CEO가 행사에 참여하고 공화당, 민주당을 넘어 에이팩과 대립되거나 마찰이 있는 정치인들은 정치생명을 마감할 정도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후원이 에이팩이며 미국 진보적 성향의 정치는 언제나 유대인과 함께 했다. 반이민정책의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지지한 유대 세력은 전통종교와 보수적 세력에 의해 탄압을 받았던 과거 유대 역사 때문이라는데 대부분의 미국인은 의견을 함께 한다.

어느 나라이던 경제적 문화적 세력이 확대되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듯 유대인의 힘은 워싱턴 정치 영역까지 성장한 것이다.

출신과 배경이 다른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돕고 교류하는 단합의 힘이었고 그들의 저력은 동일한 종교와 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치를 피해 이주한 유대인 중에는 지식층이 많았고 그들이 미국으로 가지고 온 정신적 자산은 미국의 정치,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각 분야의 위인들을 배출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지그문트 프로이드, 바뤼흐 스피노자, 프란츠 카프카, 마르크 샤갈, 레너드 번스타인 등 이름만으로 유명한 수 많은 위인들이 유대인이며 특히 노벨상 수상자 30%가 유대인이고 정치, 경제의 핵심 인물도 유대인이 많다.
세계 영화산업의 기류를 주도하고 있는 영화사의 소유주와 영화계의 거장들도 유대인이 많은데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시드니 폴락, 우디 앨런도 유대인이다.

그리고 구글, 페이스북, 스타벅스, 갭 외에도 현대 다국적 기업들의 CEO 역시 유대인이 많다는 사실은 유대인의 민족적 저력을 나타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대부터 유대인의 공동체 의식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강력한 그들의 결집력은 경제, 문화, 정치를 망라하는 세력을 만든 원동력이다.

유대인의 성서 타나크(Tanakh)와 탈무드는 유대인의 생명의 양식이고 탈무드는 세기를 넘어 종교와 국가를 초월한 세계인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유대교는 율법과 가정을 중시하며 탈무드는 토론문화를 가르치고 유대인에게 자선과 기부는 의무와 같은 것이다.

다민족 국가 미국에서 유대인의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리고 유대인의 성실한 노력과 두뇌를 지원한 하드웨어는 미국이었다.

고통의 역사를 통한 강인한 생명력이 오늘의 유대인을 만들었다면 고난과 역경의 역사를 지닌 한국인의 삶 또한 유대인과 비교될 만한 장대한 파노라마 일 수밖에 없다.

신라가 당나라에게 우리 땅 떼어주면서 삼국이 하나가 되었고 주권이 이쪽저쪽으로 내던져졌던 조선 시대부터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수난의 한민족은 조선의 인조가 청나라 태조 홍타이지에게 삼배구도두를 올리는 역사적 치욕을 당해야 했고 조선의 국토에서 청나라와 일본이 전쟁을 하고 러시아와 일본도 전쟁을 했다.

청나라로 팔려간 조선 여인들의 비참한 역사는 화냥년(환양년)과 후레자식이라는 비극적인 용어를 만들었고 명성황후가 일본의 무사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시해를 당했던 비극도 겪어야 했으며 우리나라 국어를 쓰지 못하고 창씨개명으로 일본 이름까지 지어야 했다.

남의 나라 전쟁에 한국의 청년들이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었고 한국의 여성들은 위안부로 끌려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아직도 전쟁 중이 듯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뉜 지구의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가 불과 70년 만에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 세계에 한국의 제품이 브랜드 가치를 창조하며 오늘 한국의 경제는 세계 11위까지 성장했다.

울산과 포항이 한국산업의 심장이었고 20세기부터 미국 서민의 자동차는 '현대'가 대변했으며 조선업의 역사는 코리아가 썼고 '삼성'의 이름은 일본의 기업들을 무너트렸다.

베트남전에서 악명을 떨쳤던 한국의 청룡부대가 있다면 세계 최고의 특공부대는 이스라엘의 사이렛 매트칼(Sayeret Matkal) 군이다.

고난의 역사를 비교할 때 유대인의 성공이 미국에서 시작됐다면 200년이 넘는 기간이 걸렸고 한국은 6.25 전쟁을 기준으로 본다면 현재까지 70년의 기간이 흘렀다. 그러나 발전의 근거를 기간의 소요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과 한민족의 저력과 두뇌에 공통분모를 적용할 수 있다면 두 민족의 차이는 유대인은 고대부터 이어온 동일한 종교, 영혼과 정신을 강조한 뿌리 깊은 교육, 흩어진 민족을 연결할 수 있는 인맥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고 지지할 수 있는 토대가 미국이라는 선진국 땅이었으며 그 나라의 주권을 갖고 살아왔지만 그에 비해 한국은 초토화된 국토에서 외국의 원조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했던 열약한 환경이 시초였고 동일하지 않은 종교와 교육의 부재,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문화의 속도에 두 민족의 차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이 에너지의 동력임을 역사가 증명하고 시련 속에서 연마되고 예리하게 다듬어진 생존본능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게 된 사유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원조로 시작된 자생의 노력은 한계가 있었고 대한민국 수립 이후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지원 없는 경제에 난관이 많았으며 특히 시대적인 교육의 부재는 성장의 장애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고난과 위기를 넘고 넘으며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무엇보다 희생을 감내하며 살아온 우리 부모님 세대의 묵묵한 노고가 한국인의 저력이었다는 사실은 어려운 시대의 가장 큰 자산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소프트웨어에 장애가 발생했다. 하드웨어에 오류가 생겼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마찰로 스파크가 일어난 상태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미국과 연결이 원활하지 않고 일본과의 회로는 차단되었다. 하드웨어가 중국과 북한으로 방향을 틀면서 제한이 많아졌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는 정상적인 구동을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한국에도 자본주의의 폐해가 등장한 지 오래됐으며 그로 인한 경제의 불균형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가 동일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대안이 없는데 코로나바이러스는 사회를 마비시키고 있다.

수출입에 의존하는 한국경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원자재 수급은 비상이 걸렸으며 국가 전체의 재원은 바닥이 드러나는데도 자본의 투자는 금융업으로만 향하고 있다. 투입된 해외 자본은 언제 빠져나갈지 예상할 수 없고 지역 경제는 부도 직전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을 외면한 국민의 정서이고 분열된 사회이며 잘못된 상황을 정치적 양극화로만 해석하는 왜곡된 민주주의가 난무하는 현실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분야가 경제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지만 선진국도 어쩔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선행되어야 할 객관적 시각이 방향을 잃고 현실을 직시할 능력이 없는 분열된 사회는 불투명한 내일만 예고하는 것이다.

산업의 발전과 경제의 성장은 문화적 성숙 없이는 불가능하며 창의적 자산은 문화가 배출하는 법이므로 대립된 사상이 정서를 분열시키는 난국에서는 정상적인 문화가 들어설 자리가 없거니와 성장이란 있을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극찬하고 연설 때마다 강조했던 한국의 교육열은 치열한 경쟁을 통한 능력주의를 생산하는 체제이지만 상위계층의 특혜와 입시제도의 전술만이 강조되는 교육시스템이 오늘 한국 교육의 현주소이므로 본질을 잃은 교육은 창의적 문화를 만들지 못한다.

사실 양극화는 경제의 차별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 진영의 공방은 특별한 해결책은 없고 분열만을 양산할 뿐이며 이기주의를 합리화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방안은 안에서만 찾는 게 아니다.

지금 정치권에서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정책과 법률 개정이 아니라 국제관계를 통한 실익이므로 정치외교에서의 조조의 간교함과 탈무드의 지혜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기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저력이 국내에서 양극화로 소모되는 현실은 총체적인 국가의 낭비이고 국제적인 수치이다.

벼랑 끝으로 치닫는 경제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삶을 위협하고 양극화된 사회의 갈등은 교착점이 없다. 무엇보다 분열된 정서를 수습하고 당면한 현실을 직시해야 우리의 현안을 파악할 수 있으며 변화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대립된 정치 이념과 사상은 이제 종결지어야 하며 박해와 피의 역사를 극복했던 유대인의 단결된 민족의식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애석하지만 현재 한국의 매스미디어가 전파하는 공통된 정서는 먹방과 트로트뿐이다.

금융위기 때 금을 모았던 단합된 국민성과 태안 앞바다에 유출된 검은 기름을 손으로 닦아낸 한국인의 모습이 그립기만 하다.


그러나 하드웨어에 장애가 생기면 소프트웨어는 작동할 수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