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존심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해?"
"걔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할 거야. "
"내가 누군데 나보고 이걸 하라는 거야?"
주위에서 가끔 듣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자존심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고 창피해서 못하고 성격이 못돼서 못하는 것이 정확하고 솔직한 표현이다.
자존심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고 자신의 가치와 능력, 인격을 보호하려는 심리이지만 주체가 자신이 아니고 남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한 자기만의 유동적인 성격이다.
자신의 사고방식을 남과 비교해서 나타나는 심리이므로 남의 시선과 평가가 기준이고 주체가 된다.
그러므로 자존심은 주위에서 능력이나 인격을 인정받기 위해 형성되는 심리라 말할 수 있다.
자기애의 발단이고 주관적인 사고방식이지만 남들이 알아줘야 작용이 가능한 성격이라 할 수 있으며 쉽게 상처를 받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실질적으로는 약한 사람의 방어심리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같은 단어처럼 보이지만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가치가 타인의 평가나 영향,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준이 아닌 자신의 내부에서 형성된 성숙한 주체의식이라 할 수 있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항상 당당하고 자신의 주장이 강하며 긍정적이고 남들에게도 우호적이지만 자신만의 규칙이 있어 관계 형성에 선을 넘지 않는 경향이 있고 결정이 명확하다.
그러나 자존감이 너무 강하다 보면 안하무인격인 성향으로 인해 자가당착에 빠지기 쉽고 완고하며 남들과 교감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허세를 잘 부리기도 한다.
자신감이 넘쳐나서 자기 혼자 잘난 줄 알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
반대로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의 주관이 명확하지 못해 여러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설득에 약하고 낯을 가리며 귀가 얇은 의존적 유형에 해당되고 심하면 열등감이나 자기 비하에 곧잘 빠지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은 자존감이 낮은 경우와 유사한 경우가 많은데 자존심은 남을 의식하고 외적인 자극에 동요되므로 가치의 판단이 고정적이지 않고 남의 시선과 평가에 사고가 맞춰지기 때문에 쉽게 비관하고 열등감에 빠지게 된다. 자격지심으로 인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무모한 행동이 표출되기도 하며 자존심 때문에 충동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결과에 승복을 하지 못해 실패하게 되면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술과 약물에 의존하거나 심하면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는 극단적인 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한국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는데 경기를 보게 되면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극과 극의 차이만큼 평가가 다르고 랭킹 1위 선수는 환호와 관심을 받지만 2위나 3위 선수는 존재감도 없이 금방 잊혀진다.
특히 한일 축구경기가 생중계로 방송될 때는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과열되어 쉽게 흥분하고 이기면 통쾌하지만 패하게 되면 속상한 마음에 심사가 뒤틀리는 것은 관중과 대다수의 시청자가 공감하는 심리이며 해외 프로경기에서 자주 일어나는 관중들의 난동 사건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경기의 승패 결과가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자존심과 직결되기 때문인데 경기 자체보다 경기의 결과에만 집중하는 심리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대체로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를 거듭해도 도전하고 남의 비판에 굴복하지 않는 특징이 있고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모든 책임을 감수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긍정적인 특성이 있는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해서 대부분 도전하지도 않지만 큰일이 생기면 해결할 방안을 찾기보다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에 실패해서 자살을 하는 경우나 유명한 스타가 추락하게 되면 약물중독에 빠지고 자살을 선택하는 사건은 뉴스에서 심심찮게 보도된다. 다시 생각하면 위기의 상황에서 극단적인 방법만 피했더라도 해결방안과 새로운 기회는 찾을 수 있었으며 비참한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
자존심 때문에 못한다는 것은 시도조차 안 하는 것이지만 긍정적 자존감은 많은 기회와 좋은 결과를 제공한다. 자존감은 자신의 내부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독립적인 사고의 배양이 무엇보다 필요하므로 자존감은 성장과정과 환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부모와 형제, 친구, 학교와 종교활동의 교류에서 형성된다.
과잉보호와 풍요로운 환경은 도전의식을 결여하게 만들고 이미 완성된 구조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자신의 판단과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가 고정되기 쉽고 열약한 환경에서 정상적인 교류와 교육의 기회가 없는 성장과정에서는 긍정적인 자존감이 형성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존감이 너무 높아서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되면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고 교만하며 사람을 계층별로 나누어 차별을 하고 정상적인 교류를 거부하는 양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도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 경우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발생하는데 자신을 향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지속적인 비난, 비인격적인 공격적 평가는 긍정적으로 형성된 성숙한 자존감이라도 치명적인 손상을 준다.
한번 손상된 자존감의 상처는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외적인 자극에 의한 상처는 내적으로 치유하는데 한계가 있다. 사회적으로 객관적인 평가와 비판은 감수한다 하더라도 특히 가족이나 친척, 가까운 친구나 직장동료의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평가와 자극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법이다.
그러므로 지나친 자존감은 그에 따르는 부정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자존심과 자존감의 비율을 조절해야 한다.
인간이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본성이며 인정받는다는 것은 결과의 평가에 의해 좌우되고 좋은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므로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남의 이목 때문에 행로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
수치심을 버려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듯이 살다 보면 감정을 절제하고 어렵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며 만나기 싫은 사람과도 접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목표를 이루는 것이 자존감의 완성이라면 목적을 위해 불필요한 자존심은 버려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남의 평가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자존심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감성이며 진정한 가치 향상을 위해서는 장애가 될 뿐이다.
자존심이나 자존감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내부로부터의 보호본능이지만 자신만의 아집은 쓸데없는 자존심만 키우는 것이므로 자존심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 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이고 자신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며 고립된 사고에서는 성장도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진정한 자존감은 내부에서 발생하고 형성되는 긍정적인 마음이지만 인정받는 평가와 연결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미국 소설가 시드니 셀던은 그의 저서 ‘시간의 모래밭’에서 “감성은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이며 모래알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이성은 세계를 움직인다.”라는 구절을 남겼다.
자존심은 자신을 고립시키는 불필요한 감성이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때로는 유용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남을 의식해서 쉽게 동요되는 감정이 지속된다면 진정한 자존적 가치는 기대할 수 없다.
사노라면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고 숱한 갈등과 마찰을 겪어야 하며 실추된 자존감은 회복하기 힘든 상처로 남기도 한다.
함께 사는 세상이므로 모두가 공평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지만 비교가 평가를 만들고 비교가 가치를 만들기도 하며 비교의 평가가 절망도 만드는 기준임은 부정할 수 없다.
힘들고 괴로울 때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며 자신의 존재의 가치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므로 비록 수긍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가늠하지도 추측하지도 말고 지금 현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인정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남의 시선과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도 없지만 자신감으로 무장한 만용도 실속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하듯 자존감의 회복도 충전과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세상이 변하고 세상이 바뀌면 가치관도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