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직장에 소위 말해 '빌런'이 있었다. 나이가 있으신 부장급 직원이었는데 외길 소통 인생을 걸으시는 분이었다. 누가 어떤 요청을 해도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기대하지 못했던(?) 결과물을 가져다 주셨다. 안 그래도 일정이 촉박하고 일은 많은데 이런 식의 문제가 반복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 분과 다투곤 했다. (그런데 그분은 회식자리에서 만나 이야기 나눠보면 그렇게 재미있고 좋은 분이었다. 단지 업무 커뮤니케이션이 문제였다.)
이처럼,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사람이다.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쏟는 시간이 더 많으면 지친다. 경제학적으로 서로 소통하는데 소비되는 자원을 '커뮤니케이션 비용(communication cost)'라고 한다고 한다. 많은 회사들이 스펙과 별도로 인성/문화/조직적합도 등을 보는 것이 조직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낮은 사람을 뽑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미숙한 소통방식 때문에 엄청 깨졌다. 내가 한참 설명을 하면 내용을 듣고 있던 관리자가 '그래서.... 뭐라는 거야?'라고 되묻는 경우도 많았다. 신입사원이라 긴장한 탓도 있었겠지만, 단순한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거의 30년 간 사용해왔는데도 이렇게 말을 못 하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건 말을 유창하게 하냐 못하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업무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30년 동안 사용하던 방식과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필요했다. 이는 대화뿐만 아니라 문서나 메일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자 그러면, 업무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최근에 내가 받은 메일 내용을 살펴보자.
"안녕하세요 OOO님,
최근 OOO님(임원)께서 ㅁㅁ사이트 이용에 대해 지시하셨습니다.
관련해서 가능할지 검토 후 회신 부탁드립니다."
이게 메일의 전체다. 나는 이 메일을 최소 5번은 다시 읽은 것 같다. '도대체 나에게 뭘 요청하는 거지? 임원이 지시한 세부내용이 뭐라는 거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담당자에게 뭘 요청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회신을 하고 해당 메일은 업무 우선순위에서 최하위로 밀려났다. 이런 앞뒤 설명 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 오히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는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중심적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인데 '현재 나의 이런 상황을 상대방도 알겠지'라고 착각하기 쉽다. 상대방이 들었을 때 쉽게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배경 설명을 길게 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성격 급한 한국사람들은 집중력이 짧고 굵기 때문에 앞부분에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을 명확히 해줘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신입사원 교육 때, 빠지지 않고 강조하는 것이 '두괄식'으로 말하라 인 것이다.
그런데 두괄식에 대히 조금 더 설명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할 땐,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현황 공유인지, 특정 행동을 요청하는 것인지, 의견을 묻는 것인지...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의 목적이 문장의 맨 앞에 포함되어야 한다. 위의 메일을 내가 썼다면 이렇게 썼을 것 같다.
"안녕하세요 OOO님,
다음 달 론칭하는 OO제품의 홍보를 위해 ㅁㅁ사이트 활용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자 미팅 요청드립니다. 기본적으로 광고 배너 노출, 이벤트 진행 등을 생각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방안이 있는지 문의드립니다.
추가로, OOO님(임원)께서 해당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지시사항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검토했으면 합니다.
관련해서 담당자분과 미팅을 통해 가능한 방법들 상세 논의하고 싶습니다.
바쁘시겠지만, 편하신 시간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메일을 쓰면 적어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들을 수 있다. 특히 첫 줄이 제일 중요한데, 바로 해당 메일의 목적을 한 줄로 요약해서 전달하는 게 효과적이다. 일반적인 비즈니스 메일 가이드는 서두에 안부를 묻는 말로 시작하라고 하지만... 나는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개인 성향에 맞춰 쓰면 된다. 그 뒤로는 배경 설명 등을 덧붙여 이해를 도우면 된다.
그런데 많은 신입사원들이 본인이 하고 싶은 메시지를 한 줄로 요약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럴 경우 보통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전에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목적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정리가 잘 안 된다면 노트에 간단하게 적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두괄식에 사용할 한 줄 요약이 완성되었다면, 전화든 메일이든 원하는 대로 업무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효과적인 소통을 위한 노력은 '배려'라는 점이다. 바쁜 동료나 상사에게 업무 관련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전달할지 고민하지 않는가? 그럼 해당 내용을 전달받는 사람에게 알아서 이해하라고 일을 미루는 것과 같다. 해당 내용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나는 전달했으니 알아서들 알아들으세요'라는 업무 방식을 한다면 누구도 같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일잘러가 되고 싶다면, 업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