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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y 06. 2024

친구이자 조언자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비슷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눈, 코, 입을 하나씩 떼어 보면 달랐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했다. 성격도 그랬다. 때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전체를 보면 비슷했다.


"널 안은 간호사가 곧장 아빠에게 널 데려갔대."


서른이 다 되어서까지 종종 듣던 얘기다. 내가 태어난 곳은 한 대형 산부인과였고, 분만실 앞엔 아빠들이 여럿 있었다고 했다.


분만실에서 처치를 한 뒤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와 아빠에게 아이를 보여줬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보통 산모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이의 아빠를 찾았다. 하지만 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수북한 머리에 아랫니 두 개를 가지고 태어난 나는, 처음 보는 간호사 눈에도 아빠 판박이였던 거다.


오랫동안 그런 이야기를 듣고, 또 자라면서 내 눈에도 아빠와 닮아 보여서였을까. 어린아이에서 청소년을 거쳐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는 나의 좋은 친구이자 조언자였다.


고민되는 게 있으면 언제든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해답을 주진 않았지만 그 고민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게 했다. 물론, 때론 해답을 주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학교에서 본 수학시험에서 35점을 받았다. 1년에 2번 시험을 보던 수학경시대회였다. 저학년 땐 점수가 눈에 띌 정도로 나쁘지 않았는데 고학년이 되자마자 결국 탄로(?) 난 거다.


그 점수 앞에서 아빠와 엄마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만약 조금이라도 화를 내거나 나무랐다면 기억에 남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기억은 없다.


"수학 공부를 좀 더 해보자."


아빠와 엄마는 평소보다 문제집을 좀 더 사주다가, 가장 가까운 친구와 나에게 수학 선생님을 붙여주었다. 그 친구와 나는 피아노학원도 같이 다니고 영어도 같이 공부할 만큼 붙어 다니던 사이였는데, 졸지에 수학까지 함께 배우게 됐다.


처음엔 수학 공부가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번 수학경시대회에서 딱 한 문제를 틀렸다.


"역시, 잘 해낼 줄 알았어!"


얼핏 들으면, 부모가 아이에게 괜한 부담을 주는 말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나는 좋았다.


35점을 받고 그 누구도 나를 혼내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꽤 위축돼 있었다. 하지만 단번에 좋은 점수를 받고 기분이 좋았고, 무엇보다 내가 해낼 줄 알았다는 아빠의 말이 듣기 좋았다.


미국에 가서 지내면서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해 힘들어할 때에도, 아빠와 엄마는 날 나무라지 않았다. 내 탓을 하지도 않았다.


종종 학교에 부모님을 초대하는 이벤트가 있을 때면, 아빠와 엄마는 학교로 찾아와서 나의 든든한 등받이가 되어 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국에 돌아왔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그랬다. 비평준화 지역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힘들게 지낸 3년을 졸업하던 그날.


"그 교실에 앉아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눈에 선하네."


졸업식 행사를 마치고 교실에 앉아 마지막으로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하던 모습을, 부모님들은 복도 창문 너머로 봤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날 바라보다, 아빠는 문득 나의 지난 3년이 눈에 그려졌다고 했다.


아빠는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중국에서 일을 하느라 함께 지내지 못했다. 종종 전화나 편지로 안부를 묻고 전할 뿐,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내 졸업식을 맞아 한국에 잠시 들어온 차였다.

그렇게 난 대학에 들어갔다. 가까운 친구들 중 유일하게 지방 사립대를 간 나에게, 아빠는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어디에 있는지 보다,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한 거야."


내가 지낼 공간은 남들과 좀 달랐지만, 다른 공간에서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 건 아빠였다.


20대 중반까지도 아빠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날 단 한 번도 혼내지 않았고, 혼낼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해 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커다란 골프 우산을 쓴 기분이랄까. 아빠가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사랑과 믿음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까. 아빠가 우릴 떠났을 때, 그리고 그 이유가 누구나 예측 가능한 일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을 때의 감정이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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