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땐 아빠가 오래 알고 지낸 동생과 회사 직원이 함께였다. 오래 알고 지낸 동생은 그 당시 우리도 삼촌이라고 부르던 사람이었고, 회사 직원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열린 문틈 사이, 언니는 이불을 푹 덮고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그 옆 아빠는 방바닥에 앉아 침대 쪽으로 엎드려 기대어 있었다.
열세 살의 나는 그 언니에게 데면데면하는 것으로, 그날의 일을 종이 넘기듯 넘겼다. 하지만 22년이 지난 지금도 그 방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방 안의 전화통화 소리가 닫힌 문을 타고 바깥으로 넘어왔다. 외국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더 깊게 잘 들어가는 것 같았다는 뉘앙스의 얘기였다.
그러다 어느 새부터는 우리가 다 있는 자리에서도 통화를 했다. 반갑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아빠가 우리 늘 떠난 이유가 무엇이었는진 모른다. 아빠에게 따져 묻기도 싫고, 엄마와 마주 앉아 이야기할 자신도 없다.
그러던 재작년 어느 날, 엄마 이름으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일이 있었다. 증명서를 발급하려던 순간, 서류에 이혼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여전히 엄마는, 아빠가 친척들과 지인에게 빌린 돈을 갚느라 월급의 절반을 쓴다. 혹여나 엄마의 상처와 아픔을 후비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여전히 모른 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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