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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ug 02. 2024

아빠가 있었지만 없었다.

아빠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였다. 나와 동생이 어릴 땐 아빠가 일을 하느라 바빴고, 그래서 퇴근이 늦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가족 안에 있었다.

주말엔 가까운 곳으로 놀러 갔고, 때론 멀리 여행을 가기도 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호화로운 여행은 아니었지만 우리끼리 즐거웠으니 그걸로 됐지.

초등학교를 마치기 전, 6학년으로 올라가던 해 아빠가 미국에서 일을 하게 됐다며 네 식구가 갑자기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일을 떠난 것이었을까, 아니면 무언가로부터의 도피였을까.

갑작스럽게 간 미국에선 3년 가까이 머물렀다. 그중 2년은 아빠가 함께했고, 마지막 1년은 엄마와 나, 그리도 동생만이었다.

아빠는 한국에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 셋은 아빠와 간간이 전화통화만 하며 나머지 1년을 더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빠는 없었다. 이번엔 일을 하러 중국에 있다고 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동생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해. 한국에 와서 우린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아빠와는 간간이 편지만 주고받았다.

아빠는 우리가 학교를 다니는 내내 본인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중국에서 보내왔다. 편지와 함께. 엄마 앞으로 보내오는 편지도 함께였는데, 어느 날엔 엄마에게 온 편지 봉투가 열려 있었다.

엄마에게 보낸 편지 봉투엔 우리 앞으로 온 편지 봉투와 달리 사서함 번호가 적혀있었다. 엄마에게 보낸 편지 속 아빠는, 춥지만 잘 지내고 있다며 안심하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가져다준 내복을 잘 입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엄마 앞으로 온 편지를 보게 된 날로부터 얼마 전, 아빠가 우리에게 줄곧 보내오는 책에는 무언가가 붙여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됐다. 스티커를 뗀 자국, 정확히는 종이에 풀을 한 번만 콕 도장 찍듯이 발라 붙였다가 뗀 자국.

아빠가 어디에선가 나눠주는 책을 읽고, 안내문을 뗀 것 같은 희한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새 책은 아니었다.

아빠가 중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던, 아니 어쩌면 한국에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던 때부터 아빠는 한국에 있지만, 일을 하고 있던 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다.

그러던 차에 엄마 앞으로 온 편지를 우연히 보게 되면서, 어렴풋한 생각이 말끔해지진 않았지만 무언가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고모네 식구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식전기도를 하던 할아버지가 아빠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을 때. 무언가를 말끔히 확인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할아버지는 아빠가 건강히 잘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평소의 할아버지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문장을 쉽사리 넘기지 못했다.

아빠와는 떨어져 지낸 시간이 꽤 길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뒤 두어해 함께 지냈고 또 그러다 몇 해를 떨어져 지냈다. 그때도 역시나 아빠가 있는 곳은 중국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빠와 우리 세 식구가 다시 한 가족답게 한 집에 살게 됐다. 내가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다. 다시 네 식구가 살게 되어 좋았고, 나에게도 '언제나' 아빠가 있다는 생각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떨어져 지낸 시간들을 무시하긴 쉽지 않았다. 우리의 생활 패턴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마저, 모두 달라져 있었다. 아니, 맞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건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내 마음이었을까.

우린 복도식, 방이 2개 있는 아파트에서 옹기종기 살았지만 아빠는 방문을 닫고 지인들과 통화하기 바빴고, 엄마와 나, 동생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은 적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줄면서 아빠는 바깥에 나가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아빠가 뚜렷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친구들을 만나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종종, 아빠의 핸드폰 너머로는 깔깔깔 숨넘어가게 웃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 나왔고 통화 내내 아빠는 평소에 볼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문을 닫고 통화를 하다가 언제부턴가 우리 네 식구가 외식을 할 때에도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통화를 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어느 날. 외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 그때부턴 내 마음이 확실히 달라진 것도 같고.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아빠는 결국 집을 떠났다. 새로 다니게 된 회사에서 숙소를 제공해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의심할 거리도 아니었고, 오해할 만한 상황은 없었다. 그렇게 나가 지냈다.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든, 다른 이유가 없었든 간에.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부득이한 것이었다면 다른 방법이 없겠지만. 자의든 타의든, 그런 시간들이 쌓여 오늘에 이르렀다.

아빠는 분명 살아있지만, 그래서 어딘가에 있었지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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