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까지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엄청난 역세권 아파트였다. 네 식구가 살기엔 너무나 작은 평수였다는 걸 제외하면 나쁘지 않았다.
작은 방에서 새어 나오는 아빠의 전화통화 소리.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빠는 꽤 상냥했고 다정했다.
여자일 것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상대의 목소리가 방문 밖으로 들렸던 것도 아닌데, 난 왜 그가 여자라고 단정 지었을까.
그리고 그 좋은 집에서도 종종 방문을 타고 아빠의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론 웃기도 했고, 가끔은 속삭이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아빠는 종종 연락만 해왔고 직접 만나는 횟수는 줄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시간이 흐른 지금, 아빠와는 1년에 한두 번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남자든 여자든 언제든 저렇게 돌아설 수 있음을. 언제든 마음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엄마의 잘못도 아빠의 잘못도, 그렇다고 나와 내 동생의 잘못도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