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니 Apr 13. 2024

여자가 결혼을 망설인 이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는 일. 보통의, 평범한 모두가 사는 삶을 거부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친구들이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하나둘 얘기할 때, 나는 자신 있게 비혼주의자라고 말했다. 내가 애정하는 나의 직업과 내 삶의 모든 것을 무엇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남자친구랑 결혼하기로 했어."

고등학교 친구 모임에서 한 친구가 결혼을 알렸다. 스물아홉이 되던 해였다. 함께 모인 친구들은 모두 축하 인사를 건넸다. 옆에 있던 나도 미소를 지으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게 축하할 일인가?'


입으론 축하 인사를 하면서도, 머릿속엔 물음표가 떠 다녔지만 겉으로 티 내진 않았다.


대단한 성공을 이루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내 일에 대해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에 '배가 고픈' 30대 초반이니까. 나에겐 비혼이 제격이라 스스로 되뇌며 살아왔다.


10대에서 20대가 되면서 개인적으로 가정에 아픔을 경험하면서 온전한 한 가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누군가는 가장의 무게에 짓눌리고,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한 가장의 가정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경험해서. 자의로 타의로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비혼주의자라고 여기며 지냈다.


"너희는 결혼 안 해?"


남자친구와 10년 넘게 만나온 걸 아는 지인들은 종종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비혼주의'를 이유로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남자친구도 같은 생각이야?"


남자친구는 내가 비혼주의라는 것을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입 밖으로 꺼냈기 때문이다. 종종 누군가의 결혼식을 함께 가서 예식을 보면서도 말했다.


"난 비혼주의야, 알지?"


내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손가락 하나를 펴서 입에 갖다 대며 '쉿, 조용히 하고 예식이나 보자'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2021년 12월, 2022년 1월쯤부터 남자친구와 결혼에 대해 정식으로 이야기를 하게 됐다.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남자친구 아버지의 퇴직이 임박했다는 점이었는데, 어찌 보면 그것에 떠밀려 갑작스레 결혼이란 주제를 꺼내게 된 거다.


"너희 아버지 퇴직이라고 해서, 그 이유만으로 결혼하긴 싫어."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결국 퇴직 후 몇 년 안에 결혼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그럼 우리가 아버지 퇴직 후 몇 년 안에 결혼을 하게 될까?'로 주제를 바꿔 생각해 봤다. 그럴 가능성이 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0여 년을 비혼주의자로 지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남자친구랑 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제야 나는 결혼을 우리의 대화 주제로 꺼냈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왜 비혼주의가 되었는지, 그래서 결혼을 하기 싫은 이유는 무엇인지 하나씩 이야기해 보자고 했고 나는 천천히 하나씩 꺼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실망, 그리고 가정이란 무엇인가, 나의 일과 나의 삶, 남자와 여자가 각자 짊어질 짐들, 결혼 후 겪게 될 어렴풋한 고비들까지.


남자친구는 그럴싸하게 말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내가 늘어놓은 이야기들에도 쉽게 "이렇게 하면 되지!"라고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함께 고민해 줬고 어떻게 하면 해결방안이 있을지 함께 이야기했다.


아마 그때 이야기한 이유들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남자친구와 대화를 나눈 방향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오히려 클지 모른다.


하지만 머릿속에 마음속에 가둬뒀던 생각들을 입 밖으로 꺼내고 둘이 머릴 맞대니 그나마 조금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결혼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는데?'


남자친구라면 나의 이런 고민들과 우려들을 함께 겪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참 쉬운 일이었다. 그냥 입 밖으로 꺼내면 되는 일이었던 것을, 나는 10년 넘게 '안 된다'라고 여겨왔던 거다. 비혼주의자가 된 여러 이유들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어서 그랬을까. 오랜 믿음, 신념같은 걸 배신하는 것 같아서였을까.


남들이 보면 '당연하지!' 싶겠지만 나는 그게 참 어려웠다. 생각보다 쉬운 길을 돌고 돌아온 만큼 하나씩, 정말 우리답게 준비해 보고 나아가 보고 싶어졌다.


일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 욕심이 생기곤 했는데, 결혼 준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장 우리답게, 누가 봐도 너답다고 이야기할 만한 결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보다 꽤 즐겁게 준비를 시작했다.


10여 년을 비혼주의로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으로 매주 그 '이유'에 대한 에피소드를 풀어갑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