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서른세 살이 된 지 얼마 안 된 1월의 어느 날이었다.
20~30대의 젊은 유방암 환자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나도 한 번 검사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휴가날 가까운 산부인과를 찾았다.
유방 초음파 검사를 받기로 하고 대기하고 있던 중 간호사가 추가 요금을 내고 갑상선 초음파도 함께 하는 걸 추천하였다. 큰 금액도 아니고, 이왕 온 김에 같이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하기로 했다.
오기 전에는 '시간 날 때 검사받아보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막상 초음파를 시작하자 이상이 있을까 봐 초조해졌다. 다행히 별문제 없이 유방 초음파가 끝났다. 그리고 바로 갑상선 초음파로 넘어갔다. 그런데 물 흐르듯이 진행됐던 유방 초음파와 달리 갑상선 초음파는 중간중간 멈추며 모니터를 체크했다. 잘은 모르지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좋지 않았던 그 예감은 맞았다. 갑상선암이 확실시된다며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갑상선암은 거북이암이라 죽을병은 아니라고 했다. 암이라는 말 자체가 충격이었는데 죽음이라는 단어까지 연달아 들으니 정신이 없었다. 드라마에서 암 진단을 받으면 흔히 하는 말인 '네? 제가 암이라고요?" 이런 말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고,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버버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의사가 바로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진료 예약을 해주었다.
나는 유방암 검사를 하러 왔는데 갑상선암이라니 이게 뭔가 싶다가 암 중에 예후가 제일 좋은 암이니 다행인 건가 싶기도 하면서 머리가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나 착하게 살았는데 왜 암에 걸렸지?'였다. 참 이상했다. 위염이나 감기에 걸렸을 때 '내가 이번 주에 죄를 지었나?' 이런 생각은 아무도 안 한다. 그런데 암은 내 삶의 행적과 연관이 있는 것 같은 큰 벌처럼 느껴졌다. 암 진단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럼 암에 걸린 사람들은 전부 죄인이란 말인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가족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놀라고, 슬퍼하실 엄마를 생각하니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아직 확진은 아니니 확진을 받고 얘기를 할까 하다 눈빛 하나, 말투 하나에도 변화를 알아차리는 엄마를 속일 수 없어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엄마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아직 확진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겉으로는 담담하신 척했지만 속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의 위대함을 또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얼마 후, 대학병원에서 세침검사(일반 주사기로 결절에서 세포를 빨아들여(흡인) 채취한 뒤 검사)를 받고 확진을 받았다. 그리고 확진을 받은 그날 바로 수술 날짜도 정했다. 회사에는 양해를 구하고, 그 해 남은 휴가를 몰아 쓰기로 했다.
처음 암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인지 그 후 확진을 받고, 입원할 때까지의 시간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그런데 수술방에 들어가서 대기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수술방에 누워있는 게 믿어지지 않았고, 꿈만 같았다. 처음 암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큰 벌을 받은 느낌이 되살아나면서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에 대한 원망이 폭발했다. 펑펑 울고 있는 나를 본 간호사가 당황하며 티슈를 줬고, 나는 그 티슈로 눈물을 닦으며 조금씩 진정됐다. 잠시 후, TV에서 보던 산소마스크를 끼고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니 수술이 끝나 다른 대기실로 옮겨져 있었다. 그렇게 암 진단에서 수술까지 잘 끝났고,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정기검진을 다니고 있지만 다행히 재발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젊고 건강하다고 자부했던 내가 남 얘기인 줄만 알았던 암에 걸리고 보니 누구에게나 암은 내 얘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언제든지 내 얘기 또는 가족, 친구 얘기가 될 수 있는 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