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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골드 Oct 21. 2021

그에게 처음을 선사하다!

4일 후 만난 우리는 대학로에서 연극과 낙산 야경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태풍 같은 엄청난 비바람이 시작됐다.

나보다 먼저 출발한 그에게 카톡이 왔다.

'비 엄청 와. 비에 바람에 자기 날아가겠다.'

이 정도 비바람에 발가락도 꿈쩍 안 할 나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그에게 사랑이 더 솟았다.

'자기한테 꼭 안겨 있음 되징'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이 그의 사랑은 태초부터 없는 줄 알았던 나의 애교를 찾아내 주었다.

그러나 막상 집을 나서니 다시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비바람이 몰아쳤다.

다른 약속이었음 집 나오는 순가 파투를 냈을 텐데 연애가 뭔지 비바람을 뚫고 그를 만나러 갔다.

기상악화 속에 힘들게 만난 그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나 안 보고 싶었어?' 그의 말이 개구쟁이같이 귀엽게 느껴졌다.

 

연극을 보기 전 점심을 먹으러 갔다.

피자와 파스타를 한참 먹고 있는데 내가 참 잘 먹어서 좋다고 했다.

연애 초기라 평소 양의 70% 정도만 먹는 중인데 잘 먹어서 좋다니...

원래 양 그대로 먹으면 얼마나 놀라려나?

여자들은 많이 공감할 텐데 연애 초기에는 적게 먹는 척하는 게 아니라 음식이 잘 안 들어간다.

조만간 원래 양을 먹게 될 텐데 그가 놀라지 않게 서서히 늘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다행히 비바람이 그쳐 있었고, 우리는 바로 소극장으로 이동해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와본 소극장의 첫 느낌은 자리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보는 첫 연극이라는 설렘보다는 '이 불편한 자리에서 2시간을 어떻게 버티지?'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앞섰다. 나이가 들었다는 티가 이런 데서 나는 건가? 

하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인증샷은 찍는다.

무대를 배경으로 그와 함께 티켓을 들고 있는 손을 찍었다.

잠시 후 좌석은 거의 꽉 찼고, 약속이나 한 듯 여자들이 나와 똑같은 포즈와 구도로 인증샷을 찍자 그가 좀 놀라워했다. 나이와 상관없는 여자 감성인가 보다.


연극은 내가 골랐는데 한 번도 연극을 본 적이 없다는 그였기에 어떤 연극을 봐야 할지 꽤 고민을 했었다. 어떤 일이든 첫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 경험이 어땠는지에 따라 앞으로 그 경험을 다시 할지 안 할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첫 연극은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랬고 특히, 나와 함께 보는 거라 더 그랬다. 

그래서 내가 봤던 연극 중에서 재밌으면서도 로맨스도 있는 연극으로 선택했다. 

10년 전쯤 봤던 연극이었는데 여전히 인기가 많은 걸 보니 그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 봤던 연극이라 지루하진 않을까 했는데 오래전에 봐서 그런지 처음 보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특히, 끝 무렵에 여주인공이 폴짝 뛰어 아기처럼 남주인공에게 안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젊은 연인의 풋풋함 그리고 시작하는 연인의 설렘이 잘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연극을 보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히 그도 정말 재미있게 봤고, 이렇게 재미있는 걸 이제야 봤는지 아쉽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말했다.

이제라도 본 게 어디야!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경험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 내가 그에게 좋은 자극을 주지 않았을까 조금은 기대가 됐다. 


오늘 데이트의 마지막 코스는 낙산공원 야경이었다. 그쳤던 비가 다시 오기 시작해서 올라가기 힘들긴 했지만 우산 하나로 꼭 붙어서 걷는 낭만이 있었다. 낙산 공원을 내려오는 길에는 그가 힘들었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많이 힘들었을 그에게 마음이 쓰였다. 그렇게 우리는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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