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삶의 여러 방면에 큰 영향을 끼친다.
치료를 위해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둬야 하거나 치료 비용이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영향들은 암환자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영향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사정에 따른 예상하지 못한 영향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연인에게 암 고백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암이란 큰 병에 걸린 것도 속상하고 힘든데 이런 걱정까지 해야 한다니 암환자는 참 고달프다. 하지만 내가 겪은 삶의 일부이니 어떻게 할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우선 사귀는 도중 암 진단을 받았다면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고민이 필요한 때는 암 치료를 다 받고 정기 검사를 하거나 완치 판정을 받았을 때이다.
굳이 연인에게 과거의 암 고백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점을 가질 수도 있다.
고백을 할지 말지는 본인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암 고백을 해야 하는 경우는 연인 관계에서 암 병력이 영향을 주는지의 여부이다.
먼저 치료를 받는 중이 아니라면 굳이 고백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연애할 때 암에 걸렸던 과거는 그다지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은 다르다. 사람마다 결혼관이 달라서 건강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결혼을 안 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 고백하지 않고 결혼한다면 나중에 알게 됐을 때 불화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결혼이라는 전제가 깔리면 고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남 초기라고 해도 선처럼 처음부터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시작할 때는 좀 더 빨리 고백을 빨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특히, 임신에 영향을 준다면 꼭 고백을 해야 한다. 요즘은 아이를 안 낳는 딩크족이 많아지고는 있지만 합의하에 아이를 안 가지는 것과 못 가지는 건 다른 문제이니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아직 연인에게 암 고백을 해본 적이 없다.
완치 판정을 받은 지 오래되기도 했고, 현재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암 병력이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암 관련 카페와 지인에게 암 고백을 한 후, 헤어진 커플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암을 이겨낸 사람들은 큰 병을 잘 이겨내고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에 자부심이 있고, 나 또한 그렇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누군가에게는 치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내가 암을 겪어본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암 병력을 하나의 과거일 뿐이라고만 상대가 생각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나의 암 병력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 선택권을 줘야 한다.
좀 다른 경우지만 상대가 어떤 사정으로 빚이 있었는데 다 갚았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다시 빚을 질까 봐 꺼려질 수도 있다. 암 병력도 비슷하다. 현재 완치 상태이니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앞으로 건강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니 배우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건 사랑의 깊이 문제가 아니다. 가치관의 차이이다. 결혼을 고려할 때 상대의 성격, 직업, 경제력 등 여러 조건을 보는 것처럼 암 병력도 그런 조건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암 병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서 상대를 비난해서는 안 되며 자책도 하지 말아야 한다.
연인이 암 병력이 있다고 모두 이별을 고하지는 않으며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니 너무 미리 겁먹지 말고, 어떤 선택을 하던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고백하자.
암을 이겨낸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