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 후 수술받기까지의 시간은 정신없이 흘렀고,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4주 간의 긴 휴가를 얻었다.
대부분의 갑상선암은 평생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다른 암들에 비해 비교적 수술과 회복 과정이 수월하다.
나도 퇴원 후, 며칠 푹 쉬고 나서 별문제 없이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먼저 주치의에게 수술이 잘됐다는 결과를 듣고, 암 진단 및 수술에 관한 보험금도 청구해서 받았다.
평일에는 출근 대신 늦잠 자며 먹고 싶은 것들을 먹으면서 푹 쉬었고, 주말에는 친구들을 만났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이렇게 여유 있는 일상을 보내는 게 처음이라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유가 '암'이라는 사실이 슬펐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다. 앞으로 건강을 회복할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암은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큰 병이다.
누군가의 암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의 암은 삶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다.
나도 송두리째까지는 아니지만 삶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
이전의 나는 말랑말랑해서 쉽게 상처 났던 멘털을 가지고 있었는데 암 이후에는 연약했던 멘털에 단단한 근육이 생긴 것 같다.
삶에 대한 깡이 생겼다고 할까?
가장 큰 변화는 스트레스에 대한 태도였다.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이미 일어난 일이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나의 스트레스들도 그랬다.
일어날 일은 어떻게 해서든 일어나고,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며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게 됐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실행하기 어려웠던 내려놓음을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모든 걸 내려놓지는 못했지만 스트레스를 받아서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나만 힘들어질 뿐이라는 생각을 각인하며 많은 걸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걸 내려놓음으로 인해 좀 더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그다음으로 큰 변화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 암도 이겨낸 사람이야. 이까짓 게 뭐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맷집이 생겨서 웬만한 일에는 끄떡하지 않게 됐다.
암을 한 번 겪어보니 암과 비교할 정도의 힘든 일은 거의 없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내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니 진짜 별게 아니었다.
암이 사라진 자리에 삶의 내공이 깊게 자리 잡은 것 같다.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주치의를 따라 잘 치료받는다면 반드시 그 터널을 빠져나와 고대하던 다음 막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동안 암 치료라는 어렵고 힘든 길을 꿋꿋이 잘 이겨낸 당신!
이제 다음 막을 열어 당신만의 찬란한 빛을 가진 이야기를 새로 써내려 갈 차례이다.
당신은 충분히 그럴 수 있으며 꼭 그래야만 한다.
만약 당신이 아닌 가족, 친구가 암환자라면 다음 막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