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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골드 Oct 25. 2022

암 이후, 트라우마가 생기다.

내가 살면서 느낀 가장 큰 충격은 암 진단이었다.

유방 초음파를 하러 갔다 별생각 없이 함께한 갑상선 초음파에서 암을 발견했다.

일찍 발견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불행은 불행이었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암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가짐과 상관없이 수술을 해야 했다. 다행히 수술 경과는 좋았고, 1년 후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

암 종류에 따라 검진 방법이 다른데 갑상선 암은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한다.

피검사를 먼저 하고,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갔는데 초음파 검사 도중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담당의가 검사를 멈추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자리를 옮겨 나의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수술 경과도 좋고, 1년밖에 안 지났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놀라서 몸이 굳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잠시 후, 초음파 검사는 다시 시작됐고 걱정이 된 나는 문제가 생겼냐고 물었지만 결과는 주치의에게 들으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검사가 끝난 후부터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까지 너무 걱정이 됐다.

드디어 주치의를 만나 결과를 들었고, 그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임파선 하나가 암일 수도 있어서 세침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갑상선암은 눈에 띄지 않게 작게 남아있던 미세 잔존암이 재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좀 안정하며 살고 있었는데 재발일 수 있다니 처음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떠올랐다.

주치의는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으니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암 진단을 받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초초한 시간이 지나고 세침 검사를 받으러 갔고, 담당의는 이렇게 말했다.

3가지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암, 두 번째는 염증, 세 번째는 일시적 변화


암일 가능성은 33%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지만 3%가 아닌 33%이다. 걱정이 됐지만 암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하니 희망을 가지며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결과는 매우 다행히도 암이 아니었다.


하지만 해프닝으로 끝난 줄 알았던 그 사건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1년 후, 다시 정기 검진을 하러 간 날이었다.

초음파 검사를 하려고 눕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검사를 잠시 멈추거나 한 곳만 유심히 볼까 봐 담당의의 손길과 표정을 번갈아가며 주시했다.

다행히 별다른 액션 없이 검사를 마쳤지만 결과를 보러 가는 날 다시 불안과 초조함이 발동하였다.

병원에 가는 자체가 두렵게 느껴지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 트라우마는 갑상선 검사를 받는 병원에서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일반 건강 검진은 물론, 몸상태가 좀 안 좋아서 동네 병원 가는 것도 두려웠다.

한 두 번 그러다 말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검사 결과가 안정적이라 정기 검진 때 초음파는 하지 않고, 피검사만 하는데도 여전히 병원 가는 일은 긴장되고, 떨린다.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다.

새로운 트라우마가 생긴 대신 한 가지 좋은 점이 생겼다. 병원에서 안 좋은 소식을 듣지 않기 위해 건강관리를 잘하게 됐다는 점이다.

우선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한다. 채소, 과일, 단백질 등을 위주로 탄수화물도 적당하게 섭취하며 가공식품, 인스턴트, 패스트푸드는 자제하고 있다. 또, 체력을 위해 일주일에 4~5회 정도 1시간씩 운동한다.

그리고 몸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려니'를 하나의 인생 모토로 삼으며 남에 대한 신경을 덜 쓰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좀 더 집중하게 되며 스트레스도 덜 받는 효과가 있었다.


한 번 잃어본 건강이라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기 때문에 앞으로도 성심껏 잘 관리할 것이다.

이렇게 잘 관리하면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한 노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트라우마가 생겼지만 잘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쭈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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