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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율 Jul 22. 2022

연애(戀愛)

인간의 육체적 기초 위에 꽃 피는 자연스런 애정


"쪽!"

눈이 마주쳤는데 그가 갑자기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살면서 가끔 당해본 동의 없는 키스의 결말은

뺨을 올려붙이거나 법적 공방까지 이어지는 불쾌한 기억들 뿐이었는데


그의 키스는 신기하게도 심장이 쿵 내려앉더니 이내 두근거렸다.


첫눈에 서로에게 섹스어필이 되었다니

금사빠와는 거리가 먼 나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다.




올드미스의 초입으로 들어선 34살의 겨울,

여전히 솔로였던 나는 소울메이트를 만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지인들이 해주는 소개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았다.


그래도 도통 진전이 없자 더 효율적인 방법을 고심하다 작년 11월에 결혼정보 회사를 찾아갔다.


"어떤 조건을 원하세요?"

"대화가 잘 되고 느낌이 좋은 사람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흰 알 수 없어요 조건으로 말씀 주셔야 해요"


결정사 매니저는 추상적인 나의 표현에 답답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자가 없는 남성분도 괜찮아요?"

"네 저는 마음에만 든다면 상관없어요"


그러자 매니저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신 차리세요!"  


결정사에 가입해 보니 마치 신문을 정기 구독하듯 소개팅을 정기구독(?)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나 대신 대리인이 내 생활 반경의 동선을 계산해 소개팅 장소를 정하고 시간을 조율하고 모든 걸 세팅해놓으면, 나는 아바타처럼 그들이 시키는 대로 나가서 대화만 하면 된다니! 바쁜 현대사회에서 이보다 더 효율적일 수 없었다.


나를 담당하는 커플 매니저는 반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들의 프로필을 보내왔다.


나이, 직업, 집안, 연봉, 보유재산, 부동산, 차량, 가족관계, 부모님 노후 준비 여부까지 적혀있는 장문의 프로필들을..


나는 반년이 넘도록 다양한 직업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결국 아무런 실적도 내지 못했다.  


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처음 보는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인생에 대한 가치관, 라이프 스타일, 결혼 관념을 들어보며 그 사람과의 미래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는 소개팅


이건 흡사 인생의 동반자를 구하기 위한 비즈니스 미팅 같았다.


하기 싫은 숙제 같던 데이트를 꾸역꾸역 이어가다 결국 흐지부지되었던 수많은 오답노트들이 우습다는 듯


뜬금없이 나타난 그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두텁게 쌓아두었던 나의 진입 장벽이 한방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동안 먹고 사느라 바빠서 연애의 정의를 까먹어버린 걸까?


새삼스럽게 연애의 뜻을 검색해 보았다.


[국어사전]
연애 (戀愛)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귐

[지식백과]
연애 - 인간의 육체적 기초 위에 꽃 피는 자연스런 애정  


저 짧은 문장의 정의 속에 "성적인 매력"과 "육체적 기초"라는 말이 들어가는 연애를


나는 평생을 함께할 좋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성의 센서를 바짝 곤두세우고


대화 코드, 인성, 존경할 수 있는 면을 토대로 상대를 찾았으니 하기 싫은 숙제 같던 만남들만 끝없이 이어졌던 거였다.  


과거가 쌓아놓은 수많은 데이터들과 끊임없이 펼쳐지는 새로운 자극들 사이에 낑겨있던 나에겐 "이성적인 끌림"이라는 감정은 가장 어려웠다.


심장이 뛰는 건 노력한다고 되는 범주가 아니었으니까.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경로는 무수히 많아졌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을 놓친다 해도 새로운 프로필은 얼마든지 다시 받을 수 있다.




한 사람과 진득하게 연애하는 게 더 어려워진 과부하의 세상 속에서


그 또한 수많은 선택지를 모두 포기하고 서로만 바라보자고 제안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프로필들을 놓고 이제 고인지 스톱인지 선택해야 할 시간


나는 그에게 스톱했다.


더 이상

설레임 만큼 귀한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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