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투른 사랑에 그를 잃었다
"늦었어 이미,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야"
그는 침대에 누워 얼굴을 가린 채 무미건조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나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다.
"미안해, 나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애꿎은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린다.
"아니? 쓰리아웃이야 늦었어, 좋은 말로 할 때 이제 좀 나가줄래?"
"싫어! 여기서 나가면 다시는 볼 수 없잖아"
그때 그의 고양이 쿠로가 소리 없이 다가와 내 다리를 콱 물었다.
"악!! 쿠로!!"
쿠로는 몸을 한껏 낮추더니 나를 노려보며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바보같이 왜 그랬어!"
한 달 만에 우리의 연애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마음에 사랑이라는 뜨거운 이물질이 들어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그에게 서툴고 미성숙하게 행동했고 그는 참다 참다 이별을 통보했다.
사랑할수록 감정은 점점 부풀어 올라 이성을 짓눌러버린다.
이해의 폭을 조금 더 넓혔더라면 넘어갈 수 있었던 일들로 자꾸만 서운해지고 화가 나고 그 마음은 이내 비수 같은 언어로 바뀌어 그에게 쏟아냈다. 그렇게 분노가 치솟다 보면 갑자기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반복적으로 이별을 통보해 버렸고 그는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았다.
상처받기 전에 먼저 끊어버리는 전형적인 회피형 애착의 연애
그동안의 나는 오롯이 홀로서기로 삶을 꾸려가면서 어디가서 못 배웠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부단하게 노력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노력했고 무방비 상태에서도 예의가 습관처럼 몸에 밴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덕분에 인간관계도 사회생활도 무탈하게 잘 해왔고 주변 사람들에게 갖은 처세술의 조언자 역할까지 해왔다.
하지만 이성이 OFF 되고 감정만 남은 사랑이라는 영역에서는 나는 너무나도 미숙한 어린아이와 같았다.
몇 년 전, 정말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친구가 짝사랑에 힘들어하다가 갑자기 근무시간 도중에 반차를 내고 정신의학과로 찾아가 200문항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정신건강 자가평가지를 진지하게 작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정말 그 정도로 이성적인 통제가 되지 않는 건가 의아했는데
나 또한 막상 겪어보니 이건 이성으로 쉽사리 통제할 수 없는 문제였다.
고작 한 달 만에 산산조각 난 연애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갑자기 초등학교 이학년 때 거북이를 죽여버렸던 사건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집에서 키우던 조그마한 거북이를 참 좋아했는데
어느 날 베란다에 있는 수조 앞에서 거북이를 바라보고 있다 거북이의 등딱지에 이물질이 잔뜩 껴있는 걸 발견했고 그건 미관상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거북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거북이의 등딱지를 깨끗하게 씻겨주고 싶어서 거북이를 꺼내어 수돗물에 씻은 뒤 청소용 솔로 등딱지를 박박 문질렀다. 그러나 이물질은 쉽게 제거되지 않았고 나는 더욱 힘껏 솔을 문질러댔다.
"거북아~ 언니가 깨끗하게 씻겨줄게~"
그렇게 한참을 문지르니 결국 거북이는 죽어버렸다.
나의 서투른 사랑에 거북이는 죽어버렸다.
죽은 거북이처럼 나의 사랑에 그는 떠나버렸다.
마음이 아파서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하다가 전 애인 K에게 일 년 만에 전화를 걸었다.
K는 내 전화를 받더니 말했다.
"너는 환상 속에 있어야 해 나오면 안 돼 아프단 말이야"
K에게 나는 마주하기도 힘든 존재였다.
사랑했지만 너무 아파서 회피하고 싶은 존재
"사랑하는 게 너무 어려워 내 마음대로 안돼"
내가 K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그러자 K는 대답했다.
"아니야 넌 흠잡을 게 없어 완벽해"
"아니..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난 사랑을 할 줄 몰라"
갑자기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K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뒤늦게 너의 글들을 읽어보니 슬펐어 그 당시 너와 내가 만나고 있었을 땐데 내가 모르고 있던 이야기들이 너무 많더라고..
네가 혼자 떠난 일본 여행에서 그렇게 어려웠던 일들이 있었는지도 몰랐고.. 난 너에게 남자친구의 구실을 제대로 못했었더라고"
그를 알고 지낸 지가 7년 차인데 바늘로 찔러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의 눈물을 생전 처음 보았다.
지난날의 후회로 얼룩진 그의 흐느낌에 나도 덩달아 눈물이 터져버렸다.
막차를 놓친 사람들의 울음소리는 서글프다.
K는 연애를 포기했다고 했다.
상처받을까 두려운 그에겐 사랑보다는 명확한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돈벌이가 더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K처럼 사랑을 포기한 채 살기 싫어졌다.
비록 사랑에 서툴러서 거북이를 죽여버렸던 어린 시절과 다를 바 없지만 거북이가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워서 거북이와 오래오래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졌다.
난 행복하고 싶고 꼭 행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유아기 때 이미 형성된 회피형 애착을 극복해야 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의식 겹겹이 견고하게 쌓아 올렸던 방어기제들을 내 스스로 무너뜨려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환상 속에 두지 않기로 했다.
죽은 거북이를 마주하기 두렵지만 현실 속에 변해버린 그를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침에 퉁퉁 부은 눈으로 일어나 곧장 샤워를 하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데 두려움에 현기증이 올라온다.
문이 열리고 차갑게 변해버린 그의 표정과 말투를 두 눈과 두 귀로 담았다. 심장이 견딜 수 없이 아려왔지만 이번엔 도망가지 않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은 채 그에게 기회를 달라고 빌었다.
예상대로 그는 나를 받아주지 않았고 대신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줘! 이미 난 너에게 마음이 식어버려서 일주일 동안 네가 보고 싶어지면 다시 주말에 약속을 잡을 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끝이야"
그의 말에 순순히 그의 집에서 나왔다.
주사위는 내 손에서 떠났고 이제 그의 선택만이 남았다.
그가 거부한다면 더 이상 거북이에게 청소용 솔을 들이밀지 않겠다.
거북이가 행복할 수 있게 놓아주겠다.
그리고 거북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배울 거다.
난 아직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