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지나고도 영향을 끼칠 줄 몰랐다.
첫 번째 이야기.
20여 년 전.
겨울이 지나고 봄이 무르익어 따뜻함이 온몸으로 전해지던 그날.
우리는 한참 데이트 중이었다.
서울과 대구로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던 우리는 늘 만남이 애틋했고, 시간이 늘 아쉬웠다.
그날도 어김없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는 일반적인 데이트 코스였다.
평소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고기 먹으러는 잘 가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점심으로 고기를 선택했고, 단짠단짠의 대명사인 돼지갈비를 맛있게 잘 먹었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던 탓인지, 기름이 들어간 탓인지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큰일을 잘 못 보는 편인데,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우리의 데이트 코스는 대학교 안에서 걷는 것.
얼른 도서관을 찾아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다행히 화장실은 대기자가 없었고, 빈자리가 많았다.
그 시절만 해도 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봐야 하는 화변기가 대부분이었다.
눈에 보이는 두 번째 칸에 들어갔고, 바지를 내리고 볼 일을 보려고 하는데....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내 몸을 감쌌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
이런 걸 여자의 감이라고 하는 걸까....
괜히 뒤를 돌아 옆칸의 화장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아팠던 배를 부여잡고 몸을 살짝 비틀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지금도 그런 곳들이 많이 있는데, 그 화장실은 칸막이가 아래까지 가려져 있지 않았고 살짝 떠서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인....
두 개의 눈동자.
아아악!!!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나는 바지를 어떻게 올렸는지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 기억엔 없지만 내가 냈던 소리는 지금도 메아리처럼 들리는 것만 같다.
나의 급박한 외침에 남자친구는 여자화장실로 뛰어 들어왔고, 급하게 도망치던 그 두 개의 눈동자를 향해 주먹과 발이 날아갔다. 예상외로 그는 너무 쉽게 제압됐고, 우리는 그를 화장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나는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고, 남자친구는 그 두 개의 눈동자의 휴대폰을 검사했고, 촬영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 두 개의 눈동자는....
우리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잘못했다며 싹싹 빌었고, 우리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며 그를 돌려보냈다.
(사실 그 시절은 경찰에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 두 개의 눈동자를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가 나를 알아보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보자마자 사람들 틈 사이로 숨어버렸다.
몸은 뻣뻣하니 굳어있었고, 심장은 전기 충격기를 맞은 듯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잘못한 사람은 그인데 내가 잘못한 사람인 마냥 무서움에 벌벌 떨었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며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으로 그렇게 버스를 기다렸다....
그 후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공중 화장실을 가게 되면 절대 중간 칸은 사용하지 않고, 혹시 중간 칸을 사용해야 한다면, 옆 칸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볼일을 보는 내도록 위로 아래로 살피며 불안하게 볼 일을 본다.
아직도 그날 그 두 개의 눈동자를 확실히...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