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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무스 Sep 09. 2023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18>

3장. 심연 속으로

(4) 내면의 빛이라는 수수께끼


   질 들뢰즈가 유독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빌런 미술가를 치켜세운 이유는 분명하다. 즉 조커가 자신이 소외된 세상(‘바깥’)의 행복과 영혼의 성장을 증오하고 또 혐오했듯이, 또 베이컨이 십자가에서 처형된 성자를 자신의 형상과 동일시한 해석을 진실로 믿었듯이 들뢰즈도 그렇게 행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니체가 ‘바깥’의 행인에게 돌을 던지는 자기모순에 대해 ‘누구든 다 그렇다. 또 그래야만 한다’고 대처했던 바로 그 답정너 논리와 일치한다. 이 시점에 다다르면 몇몇 독자들은 계몽적 이성이 치기 어린 고집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니체는 돌에 맞은 ‘약자의 원한(ressentiment)’을 신랄하게 비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 과장된 몸짓은 내면 아이의 토라짐이나 부풀린 자신감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마치 내가 중학생 때 놀이공원에서 엄한 친구에게 화를 냈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밤의 시간에 던져진 화가와 시인의 영혼이 예술적인 방식으로 ‘자기만의 방’을 확보했다는 점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마음의 내재적 동기 측면에서 볼 때 이념과 예술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시간에 대한 집착을 완수하려는 이념을 이리저리 조립해보는 일 자체는 영혼의 회복, 그리고 타인에게 고유한 마음을 돌려주는 것과 실로 무관하기 때문이다. 몰입해있는 당사자에게 예술은 단순히 마음 현상의 깊이나 실상을 밝혀주는 레이더 같은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 이미 지나간 길을 톺아보는 일과 어두운 숲속에서 스스로 마음의 길을 트는 일 사이에는 아득한 격차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분명 베이컨과 니체의 삶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직면한 어떤 진지함, 열정적으로 몰두함으로써 그 비밀을 드러내고 또 완수해나가야 할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마음의 미래에 감춰진 필연성의 역사에서 볼 때 그 같은 시도에 뛰어든다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변화와 진전을 계시해준다.

   이제 네덜란드의 두 화가인 렘브란트와 고흐가 우리의 여정에 가져다줄 수 있는 의의를 설명해보자. 베일에 싸인 그 수수께끼는 물론 앞서 철학자 에밀 시오랑이 말한 ‘나 자신으로부터 솟아나는 빛’, 즉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치유와 자율성을 되찾아가는 영혼의 상대적인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초기 바로크 미술 혹은 카라바조의 명암법(chiaroscuro)은 렘브란트 반 레인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연극 무대의 조명과도 같은 그 흐릿한 어둠은 마치 영혼의 어두운 형상을 드러내는 거울처럼 작용했기 때문에, 화폭을 통해 단순히 외연만이 아닌 내면까지 풍부하게 묘사하는 데 관심이 있는 작가들에게는 그 기법이 대단히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트머스 종이처럼 심리를 반영하는 그 절대적 어둠이 렘브란트에 이르면 더이상 심연의 악몽으로 뒤틀리지 않는다. 쾌활하면서도 다소 신중한 심성을 가졌던 이 화가는 빛과 어둠을 통해 삶의 유한함을 드러내는 명암법 특유의 장점을 가장 깊고 진솔한 형태로 발전시키는 데 재능이 있었다. 그의 ‘사실주의’는 다 빈치나 라파엘로처럼 인물을 신비화하거나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 고전적 기법도 아니었고, 또 카라바조나 베이컨의 자화상처럼 공격적인 이념을 품는다든가 빛을 받을 때 연극적인 징후를 나타내지도 않았다. ‘빛의 화가’라는 렘브란트의 별칭은 인간 마음의 운명에 대한 그의 집요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반 레인 렘브란트, 《자화상》, 《황금투구를 쓴 남자》


   근대적인 화가로서 렘브란트의 작품들은 정적인 분위기라는 유익함과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나쁘게 말해서 그의 그림에는 마음의 상대적인 시간에 필연적인 그런 운동성, 또 표현 기법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해석상의 자유나 충동성이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다. 대신 그는 마음이 지나가는 두 가지 시간(상대적인 시간과 절대적인 시간) 사이에 놓인 어떤 잠재적 ‘경계’, 즉 방어적인 마음의 문틈 너머에서 희미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잃어버린 빛을 얻는 방법을 알았다. 1부에서 반복해 이야기했지만, 일상 속에서 시간 문제를 염려하는 사람들의 이념적인 자아는 이미 우리 마음의 심층과 연결된 절대적인 시간을 여러 권력을 통해 서툴게 억압하고 또 앞지르려는(초월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일상에서는 이처럼 상처 입은 내면의 구조가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가령 카라바조와 베이컨이 사용한 어두운 명암을 통해 그러한 잠재적인 실상이 ‘검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제 렘브란트는 그 명암법이 화가에게 일종의 특권처럼 건네준 심리적 기법에 대해 거의 전무후무한 제어력을 가진 작가였던 것이다.

   렘브란트가 그린 작품의 특징은 거기 나타난 빛이 결코 무대에 오른 피사체의 겉을 날카롭게 비추는 시각적 하이라이트로서만 활용되지 않고, 오히려 그 빛이 마음의 어두운 심연을 끈질긴 무게중심으로 하여 유기적으로 조율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절대적인 황금빛은 놀랍게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내부에서부터 비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물감을 두텁게 사용해 생동감 있는 질감을 표현하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이 적용된 그의 그림은 과감하면서도 대단히 섬세하다. 익히 알려진 여러 미술가들이 렘브란트의 깊이에 찬사를 보냈다. 그것은 마치 한물 간 전설적인 스포츠 선수에게 현역 선수들이 존중을 표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낭만주의자 외젠 들라크루아는 “이런 그림을 그려내려면 몇 번 죽었다 깨어나야 한다”며 혀를 내둘렀고,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누군가 자신을 렘브란트와 비교하자 “신성모독”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편 급진적인 성향의 아방가르드 작가로서, 한때 카라바조에 매료되었던 파블로 피카소는 렘브란트에 대한 자신의 예술가적 정체성을 ‘엔터테이너’로 우회해 규정했다.


반 레인 렘브란트, 《유대인 신부》, 《명상하는 철학자》


   그러나 그중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빈센트 반 고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생을 마감하기 5년 전인 1885년, 가까운 지인과 함께 암스테르담의 한 미술관에 방문한 고흐는 거기서 렘브란트의 작품 《유대인 신부》와 만난다. 작품을 보자마자 얼어버린 그는 지인이 혼자 관람을 마치는 동안 오로지 그 그림만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그림 앞에서 보름 동안 마른 빵 부스러기만 먹으며 앉아 있을 수 있다면, 내 삶의 십 년도 기꺼이 바치겠다.” 아마도 고흐는 밤의 시간의 안쪽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영원의 문 같은 것을 그 그림에서 감지했던 게 아닐까? 사실 드러난 무언가로부터 비밀을 알아보는 것 또한 마음이 가진 놀라운 능력이지만, 실제로 시도되기 전까지는 그 ‘너머’를 붙잡거나 표현할 아무런 방법도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을 이미 누군가 거침없이 행했다는 사실은 이 화가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철학자 바슐라르는 렘브란트의 《명상하는 철학자》가 보여주는 수수께끼를 다음처럼 표현한다. “이 명암을 어떻게 심적 현상 속에, 다시 말해 짙은 갈색의 심적 현상과 보다 밝은 갈색의 심적 현상이 교차하는 경계 지점에 새겨 넣는단 말인가? … 이 몽상은 고요하고, 진정시키며, 자신의 중심에 충실하고, 자신의 중심에서 비쳐지며, 내용에서는 빽빽하지 않지만 언제나 조금씩 비어져 나오고, 자신의 빛으로 자신의 미광을 적시는 그런 몽상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렘브란트는 현대예술이 우리의 마음에 장려하는 상대적이고 실험적인 표현의 유희에 인색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인간 내면에 관한 시각적 재현의 법칙을 열망하는 많은 미술가들이 렘브란트를 모방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해방을 구하는 영혼이 언제까지고 안온한 어둠 곁에만 머물러있을 수는 없다. 고흐가 마음 깊이 간직한 역동적 표현의 열망은 색채 사용이 적은 어두운 명암, 그리고 재현주의적인 예술의 정교성에 갇힌 채로는 꽃을 피우기 어려웠다. 게다가 렘브란트가 그린 인간성의 빛과 어둠은 너무 정적이다. 실제로 절대적인 시간에 내던져진 마음, 즉 삶의 유한함이 주는 고통과 고독한 슬픔 곁에서 살아가는 마음은 결코 그처럼 차분한 모습만을 유지할 수 없다. 결국 고흐는 자신의 죽음까지 약 2년 반밖에 남지 않은 1888년부터 어두운 화풍에서 밝고 정열적인 화풍으로 선회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다 잘 알려진 그의 전성기 그림들은 그제야 등장하기 시작한다.


반 레인 렘브란트, 《자화상》(왼쪽) / 빈센트 반 고흐,《해바라기》(오른쪽)


   한편, 고흐는 영혼의 깊이를 표현하는 난제를 우회하면서 추상적이거나 감각적인 해석으로 이념화하기 쉬운 ‘현대적(상대주의적)’ 기법에 대해서도 큰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이는 1888년, 현대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도자 중 한 사람인 폴 고갱과 공동작품 활동을 하던 당시 빚은 갈등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에 둘은 고흐가 남프랑스의 아를에 머무는 동안 친분을 쌓았던 어느 카페의 여주인 지누 부인을 나란히 그렸다. 사실 고흐는 그녀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녀가 고흐가 도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배려를 베풀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소적인 성격이었던 고갱에게 지누 부인은 평범한 술집 마담 그 이상은 아니었다. 고갱이 그린 초상화에는 그가 천박하다고 느낀 인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문명 바깥의 삶에 대한 유토피아적 이상, 그리고 인물을 자신의 기억과 스타일따라 그리는 ‘트렌디한’ 작업 기획에 야심이 있었던 고갱은 고흐의 표현법을 계속 폄훼하는 경향을 보였다. 가령 그는 고흐가 예찬하고 또 친애해 마지않는 아를의 술꾼들, 고흐가 사랑한 너저분한 프로방스 동네와 시끌벅적한 술집 단골들, 너무 격정적이고 순진한 듯한 열정에 찬 고흐의 작업 방식이 대체로 시시하거나 심미적으로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고흐는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가 자신의 진정성을 의도적으로 모욕했다고 느껴 격분하게 되고, 짧았던 둘의 우정은 소원해지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아를의 여인》(왼쪽) / 폴 고갱, 《아를의 밤의 카페》(중간) / 폴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는 빈센트》(오른쪽)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영혼에 깊은 울림을 일깨우려면 너무 엄숙하게 굴어도, 너무 사실주의적이어도, 또 너무 상대적이고 표피적인 인상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표현법이 존재했던가? 고흐에게는 자신만이 시도할 수 있는 마음의 이야기가 아직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는 인생에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것을 실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방황했다. 고흐는 체계적으로 미술을 배우지 못했고, 자신이 흠모하던 여러 화가의 작품이나 신세대 화풍들을 독학으로 취합해나갔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에게 애정과 존경심을 보였으나 그들은 대개 고흐에게 지독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 어쩌면 이 화가의 성격이 너무 자유분방하거나 격정적이고, 내성적이면서도 고집스런 성격에다, 사교성과 정신건강이 부족했던 게 원인이었을 것이다. 고흐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나 그림을 폄훼할 때마다 자괴감을 느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불행한 자, 경멸당하는 자, 버림받은 자들이다.”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 미술을 가르쳐주던 친척 안톤 마우베, 아카데미의 스승들, 좋은 친구로 믿었던 고갱 등은 모두 그의 삶에 조롱과 멸시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럼에도 고흐는 평범한 삶의 밑바닥에서 인격적인 영혼이 겪는 고통에 대한 자신의 슬픔과 사랑을 끝끝내 긍정적이고 율동적인 색채로 승화시키고 싶어했다. 그리고 결국 ‘바깥(절대적 시간)’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열쇠였던 렘브란트의 명암과 임파스토 기법은, 비로소 고흐의 상대적인 시간에 이르러 눈부신 자유를 얻게 된다. 이처럼 영혼이 자신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몸부림에 대해 철학자 바슐라르는 다음처럼 설명한다. “모든 것은 하나의 작품이 성장하는 가운데 목표를 향해 간다. 매일같이 인내와 열정이 결합된 그 이상한 피륙은 예술가를 대가로 만들어 주는 작업의 삶에서 보다 촘촘해진다.” 오늘날 사람들은 고흐가 고통과 맞바꿔 얻어낸 밤의 운행과 그 깊은 시간이 어떤 아름다움을 가졌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망가져 버린 삶은 그의 죽음을 앞당기고 말았다. 렘브란트와 고흐의 삶에는 비극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살아 생전 자신만의 심도 깊은 스타일을 확보하기 시작하면서 세속적인 성공과 멀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회의감을 느낄 수 있다. 만약 내가 되찾은 영혼과 유명무실해진 이념이 내 삶을 망가뜨린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그런 식으로 얻어진 숭고한 아름다움이 우리의 마음을 구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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