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누'입니다.
세상에 떡볶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내 주변은 오직 떡볶이를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사람과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 이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전자다.
떡볶이에 있어서만큼은 나는 박애주의자이다. 국물이 자작한 즉석 떡볶이도 좋아하고, 철판 위에서 오래 익어 물렁물렁해진 시장식 떡볶이도 좋아한다. 밀떡도 좋고, 쌀떡도 좋다. 라볶이도 좋고, 당면이 들어가도 괜찮고, 어묵은 많을수록 좋다. 곁들여 먹기로는 삶은 달걀과 김말이와 오징어 튀김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군만두나 단호박 튀김이나 고구마 튀김도 괜찮다. 한 마디로, 떡볶이는 무조건 다 좋다. 중요한 건 떡볶이를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한다는 거다. 나에게는 일종의 ‘혈중 떡볶이 농도’를 감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 일정기간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어느 날 경고 센서가 울린다. 잇츠 떡볶이 타임! 앞으로 늦어도 이틀 내에 떡볶이를 먹어야 한다!라고.
한국에서는 이 센서가 좀 촉박하게 울려도 걱정이 없었다. 편의점 컵떡볶이부터 집 앞 분식집 떡볶이, 회사 근처 프랜차이즈 떡볶이까지, ‘긴급 떡볶이 조달’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일단 동네에 분식집이나 24시간 편의점의 존재 자체가 없고, 한식당에서 파는 떡볶이는 너무 멀기도 하거니와 맛도 그다지이어서 그것을 목적으로 기름값과 시간을 들여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아, 누가 떡볶이 좀 팔면 좋을 텐데.’
한숨을 쉬다 깨달았다. 내가 바로 ‘누’였다.
한인마트에 갈 때마다 떡, 어묵, 김말이, 군만두의 적정 재고를 확보한다. 만사 귀찮을 때를 대비한, 내용물을 뜯어 팬에 넣고 가열하기만 하면 되는 ‘떡볶이 패키지’도 냉동실에 늘 한 팩 이상으로 유지되도록 한다. 잇츠 떡볶이 타임! 센서가 울리면 가족들에게 선포한다. “이번 주말은 떡볶이야.”
멸치 다시마 육수를 내는 사이 꽁꽁 언 떡과 어묵을 물에 담가 놓고 고운 고춧가루와 간장, 설탕, 약간의 고추장으로 양념을 만든다. 육수가 끓으면 양념, 양배추, 양파, 떡과 어묵을 넣는다. 라면을 넣는 날은 국물을 좀 넉넉히 잡고 라면수프도 반 개 정도 넣어준다. 이때 만두와 김말이는 프라이팬 중약불에 얹어놓아 떡볶이와 동시에 완성되게 해야 한다. 아직 많이 매운 것은 못 먹는 둘째를 위해 삶은 달걀과 우유까지 곁들이면 분식 한 상 완성!
김밥도 사정은 비슷했다. 아니, 김밥은 손질된 재료가 ‘패키지’로 된 것도 없고 한식당에서조차 잘 팔지 않으니 오히려 더 열악하다 할 수 있었다. 이 근처에서는 오직 한 곳, 한인마트에서만 그것도 딱 한 가지 종류의 김밥을 팔고 있는데, 한국에서 기본 김밥부터 달걀말이 김밥, 참치 김밥, 돈가스나 땡초 같은 특색 있는 재료가 들어간 김밥까지 종류별로 골라 먹다 온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김밥이었다.
‘하아… 매운 어묵 김밥 딱 한 줄이 먹고 싶은데 누가 안 파나?’
아, 내가 ‘누’였지. 깜빡했네.
김밥만큼 ‘규모의 경제’를 잘 보여주는 음식이 또 있을까. 내가 먹고 싶은 것 딱 한 줄만 만드나, 애들이 좋아하는 김밥까지 열 두 줄을 만드나, 준비해야 하는 재료의 가짓수와 준비 시간은 거기서 거기다.
햄을 길게 잘라 굽고, 채 썬 당근은 볶아준다. 달걀은 얇게 지단으로 부치는데 찢어져도 걱정할 건 없다. 밥 안에 넣고 마는 데는 아무 지장 없으니까. 우엉 절임과 단무지는 다행히 마트에서 살 수 있다. 어묵은 길게 잘라 절반은 간장 양념, 절반은 고춧가루를 추가한 양념에 졸이듯 볶아준다. 밥은 큰 보울에 퍼서 소금 조금, 참기름 조금을 잘 섞어 둔다.
재료 준비에 약 두 시간이 걸렸지만 마는 것은 금방이었다. 완성되는 족족, 준비 작업부터 솔솔 풍기는 고소한 냄새에 언제 먹을 수 있나 계속 궁금해하며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의 입 속에 하나씩 넣어주다 보니, 몇 줄은 만든 것 같은데 어째 없다. 하하하.
한 입 먹여줄 때마다 아이들이 양 쪽 엄지손가락을 쳐든다. 그래, 이 맛에 요리하지.
어디서 들었더라? 누가 “엄마, 우리 간단하게 국수나 말아먹자.”라고 했더니 엄마가 “처먹는 너나 간단하지.”라고 대답하셨다던데. 그러게, 누가 감히 분식으로 ‘간단하게’ ‘때우자’고 하는 거야. 떡볶이도 김밥도 이렇게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인 것을.
정말 누가 이 근처에 분식집 하나 안 차리나? 여기 사람들한테도 인기 있을 것 같은데.
…아, 내가 ‘누’였지. 자꾸 깜빡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