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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Jul 23. 2022

굿모닝, 나이아가라!

거북 맘의 미국 여행기 3화

비행기는 정말 원도 한도 없이 타고 다녔던 이번 여행.


사이판에서 시애틀까지 3번의 환승과 26시간의 비행을 거쳐 도착한 지 3일 만에

우리는 나이아가라를 만나기 위해 다시 비행기를 타야 했다.


시애틀 공항에서 시카고까지 4시간 비행, 시카고 공항에서 4시간 대기.

거기서 다시 버펄로 나이아가라 국제공항까지 약 2시간.


게다가 미국 국내선이라 비행기 좌석도 좁고 불편한 데다가

어쩜 비행기마다 만석인지...

코로나는 이미 개나 줘버린 지 오래인 듯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은 승객들도 제법 많았고

공항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지당한 사실.

그 길고 힘든 여정과 비행을 거치면서도

단 한 번도 칭얼대거나 한숨 쉬고 짜증 내지 않았던 우리 기특한 두 거북이 자매.

친정 엄마도 여행 내내 녀석들을 보시면서 감탄을 금하지 못하셨다.

애들이 어쩜 저렇게 착하고 군소리가 없냐고...


'아, 그럼요... 자고로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고...'

'녀석들이 아무리 징징거려 봤자 씨알도 안 먹히고 눈도 깜짝 안 할 호랑이 엄마임을 이미 아는 거쥬~'


역시, 애들은 강하게 키워야...

사랑한다, 우리 거북이들~


버펄로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모두들 녹초가 돼서 기진맥진해 있었지만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있는 국경을 넘어서

캐나다 쪽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있기 때문에

아직 몇 가지 절차가 더 남아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일주일 동안 머물 계획이고, 그중 4일은 두 파트로 나뉘게 된다.

남편과 아이들은 4일 동안 토론토로 넘어가서

캐나다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놀이동산인 Canada's Wonderland에 머물며

롤러코스터 마니아의 진수를 보여줄 계획이다.


사실, 거북이 녀석들은 이 날만을 위해 기다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녀석들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기꺼이 홀로 고생을 감수하는

정말 희생적이고 대단한 부성애를 자랑하는 우리 영감...

존경합니다!


그 사이에 우리 어무이와 나는,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계속 머물면서

모녀간의 정을 돈독히 하며 추억을 쌓을 계획에 있다.

제발 이번엔 장모님이랑 티격태격하지 말고 잘 좀 하라고 신신당부하는 남편의 조언에

새삼 마음을 다잡으며 결심해 본다.

'이번엔 엄마한테 지롤하지 말고 잘해야지...'




"뭐라고요? 우리가 예약한 차가 이미 렌트 나갔다구요?"


기름값도 후덜덜하고, 아무래도 낯선 곳이라 소형차가 여러모로 유리하고 편할 것 같아서

우린 이미 도착하기 한참 전에 온라인으로 소형차 두대를 예약해놓고 왔었다.

그런데 자정이 넘어 피곤에 절어서 도착한 렌터카 회사에서

뜻밖의 황당한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우리가 미리 예약했던 소형차가 이미 렌트 나가고 없으니

대신, 같은 금액으로 큰 사이즈의 차를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아놔....

그런데 그 큰 사이즈의 차라는 게

무지막지하게 생긴 픽업트럭이었다.


신형 모델이고 윤기가 좌르르 한 메탈릭 블루 칼라의 멋진 차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일단 사이즈가 커도 너무 커서 심히 부담이 되었고

내가 운전해 본 적이 없는 차종인 데다가

결코 작은 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운전석에 앉으려면

거의 매달리다시피 해서 올라타야 할 정도로 높기까지 했다.


아무튼 지금 우리가 빌릴 수 있는 차는, 딱 이 두대밖에 없다고 한다.

남편은 문제없지만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남편과 나는 각각의 차에 올라탔다.

나는 어머니를 싣고, 남편은 아이들을 싣고

앞서 출발하는 남편 차를 따라 조심스럽게 숙소로 출발했다.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각

낯선 환경, 캄캄한 도로...

왠지 모르게 자꾸 긴장되는 마음...


올 것이 왔다.

생각보다 빨리...


하이웨이로 들어서서 앞서가는 남편 차를 열심히 따라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속도가 나질 않는다.

뭐가 문제지? 내가 문젠가? 차가 문젠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큰 차가 시속 20마일을 못 넘어가다니...

아니나 다를까, 앞서가던 남편이 전화를 해서 난리다.

도대체 왜 못 쫓아오는 거냐고

이거 완전 신형이고 좋은 차라서 엑셀레이터에 그냥 발만 올려놔도 쌩쌩 나가는 차인데

하이웨이에서 20마일로 달리고 있으면 어쩌냐고...


나도 환장하겠다고, 당최 이유를 모르겠다고 버벅거리고 있는 와중에

이번엔 차가 마치 탱크로 변신이라도 한 듯 꾸앙~하는 굉음을 내더니

연기와 함께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갓길에 세우기를 두어 번...

마침내 그 원인을 알아낸 남편이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절규한다.

"아니, 기어를 1단에다가 놓고 달리면 어쩌자는 거야, 이 사람아!"

"아~~ 악! 여자들, 정말 싫다 싫어!"


흠...

내가 평소, 고혈압 여사로 불릴 만큼 성질은 지롤 맞고 자주 버럭 대지만

명백하게 내가 잘못했을 땐, 짝 소리 안 하고 얼른 수긍하는 면은 좀 있는 편이다.


정말 생각도 못했던 대박 실수로 인해

이미 늦어버린 시각에 더 늦게 숙소로 향하는 우리 가족.

모두들 더욱더 지치고 피곤해진 나머지 다들 아무 말이 없다.

옆에서 이 난리를 지켜보시던 어무이도 그저 한숨만 쉬시며

"에혀, 이래 갖고 오늘 내로 숙소에 갈라나 모르겠다."라고 체념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두 시간이나 잤을까?


천신만고 끝에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우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가는 시간.


김여사는 완전히 떡실신해서 곯아떨어지셨고

눈을 떠보니 아침 6시가 다돼가고 있었다.


좀 더 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꼼지락 거리며 고민하는 것도 잠시.

창밖으로 들리는 물소리에 더 이상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라는 다소 긴 일정을 잡은 나이아가라에서의 스케줄상

다운타운 쪽의 편리함과 접근성, 소란스러움 보다는

메인 스트리트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숙소를 정했다.


이곳은 리뷰도 아주 훌륭했고 무엇보다 River Rapids라는 숙소의 이름처럼

위치가 숙소 바로 앞에 나이아가라 메인 폭포에서 떨어지는 강물이

급류를 이루며 흘러가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어서

새소리, 물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정말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 곳이었다.


밖으로 나가니, 약간 쌀쌀한 아침 공기가 한기를 느끼게 했지만

그래도 시애틀보다는 훨씬 견딜만했다.

'드디어 왔구나!'


Niagara pathway라고 불리는 길을 따라 천천히 아침 조깅을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러닝 본능.

바로 코 앞에 미국 국경이 있지만

지금 이곳은 캐나다 온타리오...

분위기는 미국 쪽과 아주 많이 다르다.


벌써부터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고 기대감에 부푼 나머지,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며 두근거린다.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아! 드디어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나이아가라 폭포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감동과 가슴 벅참이란...


혼자서 셀카도 찍고 폭포의 장관도 영상에 담으며

아침 조깅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나이아가라에서의 첫날 아침.

널 보려고 멀리서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힘들게 왔단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너와 한번 깊게 사랑에 빠져 보련다.


굿모닝, 나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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